누구나 들러볼 수 있는 정해진 틀에 맞춰 일정을 잡아 행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곳을 간과할 수가 있다. 땅끝마을 해남땅. 해남 여행에서도 빼놓지 않는 곳이 땅끝마을의 일몰이다. 하지만 정작 땅끝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달마산 도솔봉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달마산 정상의 기암봉우리 사이를 걷다보면 마치 신선이 구름을 타고 걷고 있는 듯 훨훨 날아다니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는 곳. 낙조는 물론이고 일출까지도 만날 수 있는 곳. 정상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약간씩 이동하면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산하를 한눈에 호령할 수 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돼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릴 정도의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지는 그곳. 단언컨대 살아생전 가야할 여행지가 있다면 달마산 도솔봉일 것이다.

해남에 들르면 으레 찾게 되는 대둔사. 대둔사 북암 마애불 트레킹을 끝내고 낙조까지 시간이 남아서 금쇄동이라는 곳을 찾게 되었다. 특별히 볼거리가 없는 그곳에서 길을 묻다가 마봉마을이라는 생소한 지명을 얻어 듣게 된다. 길 위치도 제대로 모른 체 마봉마을을 찾아 나서게 된다.
너무나 불투명한 위치 설명에 어림짐작으로도 찾을 수가 없다. 아주 어렵사리 마봉마을을 찾아 동네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마을 앞쪽으로는 기암괴석이 펼쳐지는 산이 다가서지만 달마산인지도 짐작할 수 없다. 산정의 철탑을 기점으로 차를 몰고 달려간다.
어느 지점에 이르니 이게 웬일인가? 깍아지를 듯한 절벽 산길 옆으로 환하게 드러나는 바다와 점점히 다가서는 섬들. 30여분 정도만 지나면 붉은 해가 바다속으로 빠져 들어가려는 듯 붉게 물들어 일렁거리고 있다.
차량 통행이 끝나는 지점. 그쪽에서는 마봉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달마산 기암이 뾰족뾰족 솟아 막힌 가슴이 확 풀린다.
마침 스님 한분이 차에서 내린다. 절집에 보살이 있으니 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올라오면서 봐둔 사진 포인트를 놓칠 수 없는 일. 낙조감상객 하나 없는 곳에 새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바다 멀리 낯익은 진도 세방 낙조대에서 바라본 발가락섬이 확연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근사한 낙조를 보고 흐뭇한 하루를 마감한다.
다음날 일출을 찍기 위해 서둘러 도솔봉으로 향했지만 아쉽게 때를 놓치고 말았다. 해남읍에서 유하게 된게 화근이다. 안개가 끼어 운전이 쉽지 않았고 30km가 넘는 거리가 무리였던 것. 땅끝으로 갈까 하는 생각을 저버리고 도솔봉을 향한 것은 전날 사방팔방으로 확 트인 전경을 봤기 때문이다. 분명 어두웠던 부분에서 일출을 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서. 일출은 송신탑 방면에서 볼 수 있다. 비록 제대로 된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바다에 피어나는 해무를 원없이 봤으니 이것만으로 대만족스러운 여행이다.
금세 날이 환해지고 도솔암을 향해 산길을 걷는다. 정상 밑 산허리에는 한사람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고갯길 두어개를 넘어서니 우측으로 깍아지를 듯한 산능선이 환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가만 위치를 바라보니 바다너머는 완도 군외면쪽이다. 군외면에서부터 백일도, 흑일도, 땅끝을 지나 제주도와 경계한 보길도, 노화도까지 발아래에 엎드려 있다.
달마산 정상에 자리한 기암들과 해무 사이로 드문드문한 섬과 어촌을 일망무제로 바라볼 수 있는 곳. 마치 신선이 된 듯 몸이 가벼워진다. 풍취에 취해 정신까지도 혼미해진다. 들어온 길은 있지만 나갈 길은 잊어 버리게 한다. 20여분 정도 지나니 우측으로 지붕이 모습을 드러낸다. 저곳이 도솔암? 그러다 좌측을 바라보니 거대한 바위 사위로 빼꼼히 가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울뚝불뚝 튀져 나온 바위 사이에 들어앉은 자그마한 건물. 아름다운 절경에 매료돼 한동안 넋을 빼놓고 있는데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난다. 전날 만난 스님과 기도차 들렀다는 노보살이다.
아랫마을이 고향인 스님은 인연이 돼 이곳에 절집을 세운지 3년째. 오래전부터 이곳에 절집이 있었다지만 그것을 증명해주는 곳은 주춧돌 하나뿐이다. 스님 법명은 법조. 켜켜히 성벽을 쌓은 듯 올린 돌과 기암위에 들어앉은 절집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진 찍는 것을 도와준다. 그리고 용담샘을 안내한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석간수.
스님은 물이 필요한지 파이프에 물을 부어 채우기 시작한다. 물이 채워져야 모터를 돌릴 수 있다고 한다. 아침 예불을 올리는 스님을 뒤로 하고 절집 뒤켠 봉우리에 오른다. 일몰과 일출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장소다. 달마산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던 염불이 끝나고 요사채에 앉아 뽕잎차를 얻어 마신다. 조립식 건물안은 지은지 오래지 않아 깨끗하다. 모두 등짐을 지어 올려 만들었을 터. 점심 공양까지 얻어 먹고 돌아섰지만 사람 사는 것에는 늘 필요한 것들이 있다. 용샘에서 물을 퍼와야 하기 때문에 설거지는 물론이고 씻는 것조차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보고 느끼는 것으로 끝을 냈으면 관념에 어지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과의 인연은 때로는 느끼지 않은 것까지 간직해야 하는 일인가보다.
■자가운전 : 대둔산에서 금쇄동 팻말따라 들어오면 땅끝으로 가는 77번 지방도와 만난다. 산정에서 송지해수욕장쪽으로 가다보면 대죽이라는 팻말이 왼쪽에 있다. 이 대죽팻말을 따라 들어가면 마봉마을과 만난다. 마봉에서 왼쪽 철탑을 기점으로 들어가면 된다.
■별미집과 숙박 : 해남읍내의 천일식당(061-536-4001)은 떡갈비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천변식당(061-536-2649)은 추어탕과 짱뚱어탕으로 해남사람에게 소문난 집. 천변 길 건너에 있는 주막식당(061-533-5377)은 회종류를 파는데 계절 별미인 세발낙지도 있어 간단하게 술한잔 하기에 좋다. 또 백반 등도 반찬이 많고 깔끔하다. 숙박은 유선장이나 해남읍내의 모텔 이용. 또는 대선찜질사우나(061-535-3700)가 가장 규모가 크다. 단 모두 준비해 가야 하며 수면실이 덥고 불편한 것이 흠.
■여행포인트 : 고천암에는 철새떼가 날아오고 있다. 철새 뿐 아니라 갈대밭도 운치있다. 해남읍에서 진도방면으로 난 13번 국도를 타고 가면 팻말이 있다.

◇사진설명 : 달마산 정상 부근에 들어앉은 기암들과 바다안개 사이로 보이는 섬들이 몽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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