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사이트]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선두주자, 그립
‘네이버 기획자’김한나 대표가 첫선
상품 대신 제작자·구매고객에 초점
정보 아닌 정서 전달해 공감대 형성
실시간 소통·톡톡 튀는 재미 전달
‘세상 더 좋게 만드는 방송’이 지향점

라이브 커머스가 눈길을 끌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트렌드가 확산되며, 라이브 커머스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라이브 커머스는 온라인 방송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서비스다. TV홈쇼핑을 인터넷과 모바일로 옮겨온, 모바일판 홈쇼핑이다. 라이브 스트리밍과 e커머스를 결합했다.

라이브 커머스 시장이 가장 발전한 곳은 중국이다. 중국의 타오바오는 이미 5년 전부터 라이브 커머스를 시작해 운영하고 있다. 타오바오는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업체인 알리바바가 중국 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다.

라이브 커머스는 특히 올해 광군제에서 그 위용을 발휘했다. 1111일 열린 중국 최대 쇼핑 축제인 광군제 행사에서 올해 알리바바는 매출 4982억 위안을 거두었다. 우리 돈으로 84조원이다. 역대 신기록이다. 타오바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라이브 커머스를 광군제 행사 전면에 배치시키며, 화력을 높였다. 올 한해 동안(9월 기준) 타오바오 라이브가 올린 총거래액은 3500억 위안(595000억원)에 이른다.

 

국내시장 규모 3년내 7조원대

중국 첸잔(前瞻)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생방송 전자상거래(라이브 커머스) 시장규모는 9712억 위안(165조원)에 이를 전망이며, 생방송 전자상거래 사용자 규모는 3.7억명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의 라이브 커머스가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면, 국내 시장은 이제 막 태동기다. 네이버는 올 3네이버 라이브쇼핑을 론칭, 출시 3개월 만에 누적 시청자수가 3000만명을 돌파했다. 카카오도 올 10카카오 쇼핑라이브를 선보이며, 본격 진출했다. 카카오 쇼핑라이브는 출시 한 달 만에 누적 조회수 1000만회를 넘겼다.

또한 신세계 SSG, 쿠팡, 롯데마트 등도 라이브 커머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자체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을 선보이거나 아니면 기존의 라이브 커머스 업체와 협업해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TV홈쇼핑을 비롯한 기존의 유통 채널들 역시 라이브 커머스 시장 진출을 가시화하고 있다.

이베스트 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해 국내 라이브 커머스 시장 규모는 약 3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전체 e커머스 시장의 1.9% 에 이르는 규모다. 아직 크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2023년에는 7조원을 넘기는 등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을 선 보인 스타트업은 그립이다. 김한나 그립 대표가 20192월 론칭했다. 네이버나 카카오보다 1년 이상 빨랐다.

김한나 대표는 네이버 스타 기획자 출신이다. 네이버에서 카메라앱 스노우를 기획했고, 라이브 퀴즈쇼 짐라이브도 만들었다. 젊은 트렌드를 살피던 김한나 대표는 라이브 커머스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언니랑 영상 통화하듯 물건을 팔면 어떨까하는 아이디어였다. 이는 어느 날 우연히 본 TV프로그램에서 더욱 구체화됐다. ‘6시 내고향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시골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노부부 이야기가 나왔다. 별난 게 없었다. 부부가 함께 사과를 따며 티격태격 작은 입씨름을 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정감이 갔다. 괜히 사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거다! 김한나 대표는 무릎을 쳤다. 딱히 물건을 파는 프로그램도 아니었는데, 시청자들에게 구매욕을 당겼다.

TV홈쇼핑과는 차별되는 포인트였다. 카메라는 상품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상품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뒀다. 제작자와 시청자 간에 공감대를 만들어주고,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 친근감을 형성해 준다면, 라이브 커머스에 승산이 있다고 봤다. 쇼호스트가 아닌 옆집 언니. 정보가 아닌 정서를 전달하는 게 핵심이었다.

김한나 대표는 20188월 네이버에서 퇴사하고,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창업에 착수했다. 네이버에선 김한나 대표를 붙잡았다. 연봉 몇 배를 약속하며 퇴사를 만류했다. 원래 받던 연봉도 상당히 큰 액수였다는 데 말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결심을 꺾진 못했다.

 

대형사 카피전략 방어가 관건

대체 어떤 자신감이었을까. 어떤 꿈이었을까. 김한나 대표는 함께 일하던 개발자 동료 4명을 이끌고 함께 나왔다. 동료들은 대체 뭘 믿고 나온 걸까. 그립의 모토처럼 세상을 더 좋아지게 하는 서비스에 자신이 있었던 걸까.

이들은 라이브 커머스가 가진 가능성에 베팅했다. 라이브 커머스는 MZ세대의 성향에 딱 맞았다.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했고, 톡톡 튀는 재미를 전달할 수 있다. TV보다 유튜브나 틱톡이 더 익숙한 이들에겐 찰떡궁합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라이브 커머스에선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라이브 커머스에는 TV홈쇼핑 같은 완성도는 없지만, 아마추어 야구를 보는 듯한 풋풋한 재미와 정감이 있다는 것.

코로나19는 라이브 커머스 시장에 불을 지폈다. 언택트 문화를 확산시켰고, 덕분에 e커머스와 라이브 커머스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립 같은 스타트업에겐 호재지만, 다른 한편으론 골칫거리를 안겨주었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빅테크가 진입하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마켓컬리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마켓컬리는 국내에서 처음 새벽 배송을 시작한 업체다.

차별적 서비스로 소비자에게 빠르게 다가갔지만, 대형 업체들의 카피 전략에 고전하고 있다. 그립도 비슷하다. 아니 그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마켓컬리는 3년 정도 시장을 독주하며 체력을 키웠지만, 그립은 채 1년 밖에 시차가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붐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래도 선두주자업체로 유리한 점을 확보하고 있다. 그립은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동시에 여기서 얻은 노하우와 솔루션을 이용해 타 업체에 제공하고 있다. 최근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 SSG닷컴이나 AK, 아모레퍼시픽 같은 기업들이 그립의 라이브 커머스 솔루션을 이용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른다. 라이브 커머스를 가장 먼저 시작했고, 실시간 방송량도 가장 많다 보니 신뢰를 얻었다. 그립이 방송하는 채널 수는 하루에 400여개에 이른다. 이는 여타 빅테크 경쟁자들의 방송수보다 압도적으로 큰 수치다.

하지만 본업은 역시 플랫폼 사업. 플랫폼 사업의 수익 모델은 수수료와 에이전시, 콘텐트 제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수료는 라이브 방송에서 판매된 매출고의 일부를 일정 비율로 취하는 방식이다. 에이전시 사업은 제조·유통업체와 유명 셀럽을 매칭시켜주고 있으며, 콘텐트 제작은 라이브 방송 콘텐츠를 만들어 주는 사업이다.

빅테크와의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그립만의 차별점이 필요하다. 쉽지 않다. 무언가를 만들어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카피 제품이 나온다. 작은 변화나 신규 서비스로는 답이 없다. 그립은 보다 근본적인 데서 해결책을 모색 중이다. 김한나 대표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서비스라는 모토에서 답을 찾고 있다.

이 사업을 시작하며 소상공인들에게 많은 응원을 받고 있어요.” 김한나 대표는 말한다.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했는데, 그립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는 감사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라이브 커머스는 소상공인에게 좋은 판로다. 비용 부담이나 광고 여력이 없던 업체에게,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도 소비자에게 다가갈 방법을 못 찾던 이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다.

한 업체는 생방송 중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동안 얼마나 어려웠는지 공감하게 해주는 방송이었다. 꽉 막힌 숨통을 트여주는 방송이었다.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방송이었다.

 

- 차병선 기업전문칼럼니스트
- 일러스트레이션 신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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