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하게 진기한 물건을 값싸게 구하게 된 것. 이것을 기화(奇貨)라 한다. 전국시대 말기 天下의 패권을 秦이 장악하게 됐다. 이 무렵에 秦·韓 국경도시 양척(陽隻)이라는 곳에 여불위(呂不韋)라는 배짱 큰 상인이 있었다.
여불위가 시작한 기화는 ‘물건’이 아니고 ‘人間’이다. 그가 趙의 도성 한단(邯鄲)을 거점으로 삼은 것은 당시 한단이 천하 제일의 문화도시며 각국 실력자들의 왕래가 많아서 ‘기화상술’을 펴기에 적격이었기 때문이다.
전국말기에 이르니 각국에서 대신급 고관들의 실각(失脚), 등용이 많았다. 어수선한 세태의 반영이다. 실각한 사람은 거의가 재임관(再任官)운동에 동분서주하다가 떨어지고 야밤에 다른 곳으로 숨어버린다. 그때까지 고관집에 고용됐던 집사, 식모, 유모 등이 실직자가 돼 버린다. 이들 下人들의 취업조건은 첫째가 상류사회의 예절이었으나 양쪽을 접속하는 다리가 없었다.
이점에 착안한 것이 여불위었다. 그는 실직한 下人들이 재취직 될 때까지 한 울안에 살 수 있는 합숙소를 마련하고 요소요소에 안내팻말을 세웠다. 인간매매 상인이 된 그는 10여년 만에 千金의 재산을 모았다.
바로 이무렵 여불위에게 큰 변화가 생겼는데 天下통일에 꿈이 익어가는 秦의 강대한 권세를 여불위가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秦의 다음 국왕은 안국군(安國君)이고, 20대 미만의 그의 서자 자초(子楚)가 趙의 인질이 돼 한단에 있었으나 秦趙간 사이가 악화되자 자초의 생활이 궁해졌다. “자초가 기화다”하고 여불위가 자초를 찾아가서 말했다.
“왕손(王孫:子楚)의 아버지 안국군은 국왕이 되겠으나 안국군의 사랑을 독점한 화양부인(華陽夫人)은 아들도 딸도 없었다. 왕손이 화양부인의 양자가 되라. 그렇게 되면 왕손이 안국군 다음의 국왕이다. 그 공작과 비용은 내가 하겠으니 맡겨라”하는 내용이다.
승낙을 얻은 여불위는 千金의 재산을 투자해 화양부인을 만나 자초의 입양(入養)문제를 공작했다.
자초의 입양공작에 성공한 여불위는 안국군과 화양부인으로 부터 자초의 후견인에 임명돼 한단으로 돌아갔다.
그후 秦은 안국군이 국왕이 돼 1년만에 사망하고 자초(子楚)가 국왕(莊襄王:BC 249~247)이 되면서 상인 여불위는 정치인으로 변신해 재상의 자리에서 사실상 국왕의 권한을 행사, 天下에 둘도 없는 권력과 부(富)를 가졌다.
이 얘기의 여진(餘震)으로 천하를 통일한 유명한 시황제(始皇帝)의 실부(實父)가 자초(莊襄王)냐? 여불위(呂不韋)냐? 하는 흥미 넘치는 일도 있었다.
이 얘기에서 느끼는 것은 大常人은 배짱도 커야한다는 점이다. 여불위의 큰 모험은 그의 배짱이 배경이다. 그는 千金의 막대한 재산을 거침없이 모험에 투자하는 배짱을 보였다.
이 고사의 원명은 ‘기화가거’(奇貨可居). ‘갖고 있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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