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모 기업인이 북경에서 우리의 현 수준을 국제수준과 비교하면서 “우리의 정치인은 4류, 관료행정은 3류, 기업은 2류 수준이다. 이 정권 들어와서 행정규제가 풀린 것이 하나도 없다”고 발언한 것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당시 정부와 한동안 불편한 관계가 됐던 사건이 있었다. 이 분은 1993년에 이미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모두 바꾸라”는 신경영이란 이름의 경영혁신을 주창하면서 한국경제의 변화를 선도한 바 있는데, 그 당시 동 그룹의 경영혁신은 주력기업들이 2000년부터 초일류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시간은 흘러 어언 2002년 말, 동 그룹은 IMF 경제위기 와중에도 핵심사업을 중심으로 핵심역량을 극대화한 사업운영결과 세계적인 전자회사를 키워내게 됐고, 동 회사는 올 한해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사상 최대규모의 기업성과를 거둘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럼, 그 당시 거론됐던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기업규제는 2002년 현시점에서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올해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2002년 세계경쟁력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 80개국 중에서 국가경쟁력 순위가 지난해 보다 두 단계 상승한 21위에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현정부 들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향상되기는 커녕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으며, 그 뒷걸음질 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국가 경제 발목 잡는 4류 정치권

올해 국가경쟁력 순위가 높아진 것은 전적으로 인터넷 사용을 비롯한 정보통신 분야의 선전과 교육열 (학교인터넷 접속률 3위, 고등교육기관 진학률 5위, 인터넷 사용자수 5위, 인터넷서비스업체 경쟁수준 6위) 덕분이며, 입법부의 효율성(53위), 사법부 독립(41위), 세무부정(50위), 수출입 업무 부패(34위), 정부관료의 정실주의(30위) 등 공공부문에서는 후진국 수준의 평가를 받아서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 또 은행건전성 부문에서 55위를 기록, IMF경제위기 이후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한 정부조치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노사관계협력 55위, 기업이사회 효율성 45위, 창업허가 항목에서 54위에 랭크돼 기업하기 힘든 나라이며 동시에 기업 설립 절차가 여전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러한 항목들의 낮은 평가를 감안해 본다면, 90년대 중반 이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현시점에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행정과 정치권이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국가경쟁력이 일류가 되는 과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여전히 3류ㆍ4류로 평가한다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싶다.

업그레이드된 정치·행정 지원 절실

한편 기업활동의 자율성이나 행정규제의 측면에서는, 미국 헤리티지재단에서 발표한 ‘2003 경제자유도’ 조사를 참고할 수 있겠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전세계 161개 국가에서 52위를 기록, 지난해(38위)에 이어 2년 연속 큰 폭으로 추락했다. 말로만 ‘시장경제’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금강산 관광개입이나 증시부양과 같은 정부개입을 통한 ‘신관치경제’로 회귀한 데 대한 국제사회의 냉엄한 평가의 결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현 정부는 IMF경제위기를 조기에 극복한다는 정치적 목표에 집착, 기업구조조정에 직접 손을 대 시장을 망가뜨렸으며, 지난 5년간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부실기업 처리 등 기업 구조조정에 직접 간여해 기업 경쟁력과 시장의 자율성을 크게 손상시켰다.
‘모리시마 미치오’란 일본 경제학자는 1999년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라는 책에서 일본이 몰락하고 있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정치는 3류, 경제는 1류라는 것은 결코 오래 버틸 수가 없다. 1류의 경제가 3류의 정치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다만 시간의 문제일 따름이다.” 실제로 일본경제는 작년 마이너스 0.5%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벌써 10년째 뒷걸음질치고 있다. 그는 일본 경제가 표류하는 이유를 전적으로 정치적인 리더십의 부재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기업과 기업인들은 그동안 죽기살기로 노력해 그나마 2류 수준의 경제라도 지탱해 왔지만, ‘모리시마 미치오’의 지적처럼 그나마도 정치권과 관료행정 쪽의 수준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탄탄한 펀더멘탈의 일본경제도 휘청거리듯 우리 경제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더욱 염려되는 것은 이러한 국가경쟁력의 문제가 국가적 아젠다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현실이다. 대선과 정권교체기를 맞아 정치권의 대중영합적 정책발표와 집단이기주의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 경제의 미래를 절실한 화제로 삼고 있지 않다는 점은 대단히 걱정스럽다.
우리 경제가 21세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1류 정치ㆍ1류 행정의 지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이제 며칠 뒤면 국민들은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를 이끌고 나갈 새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 이번 선거를 통해 일류 국가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의 탄생이 있기를 진정으로 빌어마지 않는다.

송광선(순천향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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