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진항 전경
거진항 전경

올해는 눈이 잦다. 동네 골목에서 눈사람을 자주 보게 된다. 손 시린 줄도 모르고 눈싸움이며 눈사람 만들던 어린 시절로 기억을 끌고 간다. 물론 올해의 빅 히트는 눈 오리다. 하나씩 사서 아이들과 만들어 보셨는지요.

눈 하면 강원도다. 그쪽에서 군생활 하신 분은 눈만 보면 몸서리 치겠지만, 강원도의 눈은 남다른 맛이 있다. 요즘은 터널이 뻥뻥 뚫려서 강원도 가는 길이 그다지 험하지 않다.

눈은 차를 고립시킬 만큼 무섭지만, 추억 속의 눈은 아스라하게 가슴을 적시는 존재다. 삼십 년도 더 넘은 겨울의 어느 날, 나는 강원도 거진행 버스에 올랐다. 아마도 마장동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겨우 경기도를 벗어났을 무렵, 눈이 오기 시작했다. 버스 안내양(그때만 해도 안내승무원이 타고 있었고, 안내양이라 불렀다. 물론 차내 흡연도 가능하던 시대다)이 마이크를 들었다. “승객 여러분, 안전 장비를 사용하기 위해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안전한 차내에서기사가 내려서 바퀴에 체인을 감기 시작했다. 요즘은 참 보기 힘든 장면. 그 당시는 시내에서도 체인 감은 차들이 아주 흔했다. 체인을 감은 차는 비틀거리며 강원도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눈이 심하게 왔다면, 차를 돌리거나 고립됐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체인의 힘으로 진부령 고개를 올랐다. 당시는 거진, 화진포 쪽으로 가려면 진부령을 올라야 했다. 버스는 밭은 숨을 내쉬며 진부읍에 도착해서 사람을 내리고 새로 태웠다. 차부의 휴게소에서 몸을 녹이는데, 커다란 연탄난로와 강원도 산간지방에 어울리는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파카를 입은 아저씨들이 난로 주위에서 보리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던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다. 뭐랄까. 진부 같은 산지의 읍에서 맡을 수 있는 산간의 냄새도 났달까. 아니면 거친 사내들의 냄새였을까. 이제 그런 장면도 냄새도 재연할 수 없다. 그저 내 뇌와 후각 안에서만 희미하게 작동될 뿐.

진부령 고개를 넘은 차는 아주 기어가다시피 하면서 기어이 종점인 거진까지 갔다. 다행히 눈은 그쳤다. 항구는 바빴다. 명태를 잡아온 배들이 새카맣게 정박하고 있었고, 허름하게 지붕만 가린 항구 작업장에서 아주머니들이 명태 배를 따고 있었다. 거진읍은 아마도 이때가 마지막 전성기였을 것이다. 점차 명태가 안 잡혀 배가 놀더니, 이제는 명태잡이 배는 한 척도 없고, 동네 경제는 사라져버렸다.

거진항은 오랫동안 명태로 돈을 많이 벌었다. 다방도 많았고, 식당에 술꾼들도 가득 차 있었다. 다 명태로 바꾼 경기(景氣)였다. 저녁으로 명태찌개 한 냄비를 먹었다. 1인분씩 찌개를 팔지 않는데도, 나이 어린 외지 총각을 위해 식당 아주머니가 마음을 베푸셨던 것 같다. 그 동네 사람들은 워낙 함경도와 강원도 북부 지역의 실향민이 많아 말씨가 아주 특이했다. 그 거칠어 보이는 사투리가 투박했지만, 마음들은 푸근했다. 찌개는 당연히 동태 아닌 생태였다. 동태찌개는 서울이나 다른 도시, 지역에서나 먹는 것. 명태가 지천으로 나는 동네에서 동태를 먹을 리 없지 않은가. 알도, 내장도 풍성하게 들어간, 다디단 생태찌개가 어떤 맛이었는지는 내 혀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옆 자리의 어부 아저씨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로 거나하게 술을 드시면서 시끌벅적하던, 가게의 후끈한 열기만 아직도 내 볼에 닿는 것만 같다.

며칠 전에 장에 가서 동태 몇 마리를 샀다. 아직은 무가 아주 맛있는 계절이니 맛을 보장한다. 동태도 철이 있다. 당연히 겨울이다. 아아, 고춧가루 매콤하게 뿌리고 마늘과 파는 넉넉히, 무 시원하게 깔아 끓인 명태찌개. 침이 고인다. 그리고 다시, 펄펄 눈 나리던 강원도 고개를 오르던 버스 안의 유행가 소리도 귀에 다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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