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코로나19역은 없어
희망 안버리면 일상역에 도착
한파 감내하는 中企에 응원을

김광훈 칼럼리스트
김광훈 칼럼리스트

당대의 인기작가로 우리에게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로 잘 알려진 서머셋 몸이 페인티드 베일이라는 영화의 원작자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20세기 초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의 오지에서 분투하는 젊은 세균학자와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수작이다.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수녀원에서 봉직하던 수녀가 전날 콜레라로 죽은 것을 두고 원장 수녀가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현재 코로나 사태는 준 전시나 다름없다.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인류가 과거와 같이 속절없이 당하지 않고 나름 대응할 수 있는 과학과 의료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모스크바에 오래 거주했던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러시아에는 해당 지역에 역명이 없다. 예를 들어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역이 없다. 모스크바역은 의외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나 가야 있다. 마찬가지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은 모스크바에 있다. 일견 엉뚱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있는 곳이 모스크바인지는 누구나 아는데 구태여 모스크바역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도 같다. 그 역에 가서 열차만 타면 이변이 없는 한 원하는 역에 도착하니 희망을 미리 가불해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우리가 있는 역은 코로나 역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역이고 우리는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도착이 확실하다면 인간은 그 고통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우리나라 GDP는 세계 10위다. 12위 주변에서 맴 돌다가 10위로 자리 매김했다. 1인당 GDPG7 국가인 이탈리아를 추월한 것은 규모와 실질면에서 내실이 갖췄다는 이야기다. 물론 관광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이탈리아가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데 비해 휴대폰, 반도체, 자동차 등 코로나의 영향이 덜한 부문 비중이 큰 우리 산업의 특성에 따른 결과이긴 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5위까지도 넘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칫 방심하면 10위를 지키기도 어려울 수 있다.

오래전 말레이시아 페낭에 갔을 때 반도체 업체를 포함해 세계의 모든 주요 전자업체가 모여 있는 걸 보고 위기감을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관련 자료를 찾아 보진 않았지만, 얼마 전 말레이시아인들에게 직접 물어본 결과 내린 결론은 한국과 같이 모험을 불사하는 기업가 정신이 그들에겐 부족한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효석이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수필집에서 목탄을 연료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빵을 사러 가는 장면을 묘사한 적이 있다. 얼마 안 있으면 현재의 내연기관도 이런 추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 배터리를 통해 21세기판 최대의 산유국이 되고 있다. 물론 대기업 혼자선 불가능한 일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어려움을 견뎌내며 그들과 협업하는 99%의 중소기업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중소기업은 자금, 인력, 기술력, 정보력 등에서 대기업과는 차이가 너무 크다. 그런데도 이런 체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중소기업이 감내할 수 없는 규제의 틀에 씌운다면 고사할 수밖에 없다.

이들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중소상공인들이 있다. 집합금지명령 내려졌는데 월세는 어김없이 돌아오는 현실에 절망하며 이 분들은 하루 하루 버티고 있다. 현재 재난 지원금으론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지만 바로 우리 자녀들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기 때문에 나라 곳간을 무한정 열어 제칠 수도 없는 노릇임은 누구나 잘 안다.

이런 어려운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격려하며 남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어느 중국 음식점의 광고 명함을 산책 중에 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픔, 슬픔, 고독, 외로움. 이런 것도 삶의 꼭 필요한 선물이더라.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아픔 없는 사람 없다. 힘들거든 (중략) 우리 쉬어서 가자”. 기업(enterprise)이라는 어원이 모두 희망을 가지고 일에 착수하는 것인데, 이는 코로나를 포함한 다른 생물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의 보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 김광훈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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