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을 기다리는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나타내고 백화점 매출이 조금 늘어났다는 점을 들어 경기회복을 점치고 있다. 하지만 내수경기 ‘봄날’은 아직 멀었다.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들은 여전히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떨고 있고 봄이 온다는 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지난 연말 2008년까지 12조원의 자금을 지원키로 하는 벤처활성화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2010년까지 세계시장을 선도할 부품·소재품목 100개 확보와 300개 중핵기업 육성, 금융·인력양성 시스템 정비 등 중소기업정책과제를 확정했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벤처·중소기업 육성을 올해 경제정책의 중심에 두겠다”고 했고,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3만개를 육성하겠다고 했다.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겠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건 그만큼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걸 말해준다. 벤처기업을 육성하고 정책의 무게중심을 중소기업으로 돌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정책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벤처기업이 중요하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육성할 수는 없다. 벤처기업을 양산하려다가 진짜 벤처기업을 죽일 수 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벤처 생태계 조성에 역점
김대중 정부는 IMF 한파 속에서 벤처지원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했다. 지원에 힘입어 생겨난 벤처기업은 IMF환란에서 한국경제를 구출한 구세주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은 벤처붐에 편승, 대박을 터뜨리는 환상에 젖기도 했다. 벤처붐이 거세게 일자 벤처기업 육성목표를 당초 2002년까지 2만개로 잡았다가 2005년까지 4만개로 늘려 잡기도 했다.그러나 벤처붐이 거품이었다는 것을 알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벤처 열기는 싸늘하게 식었고 온갖 비리가 불거지면서 벤처와 코스닥은 신뢰를 잃었다. 벤처기업이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했고, 정부지원에 힘입어 생겨난 기업은 기술력도 없는 껍데기 벤처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중심의 지원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벤처기업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역점을 두었어야 했는데 정부가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려고 개별기업을 지원한 게 탈이었다.
中企 압박요인 제거토록
이번의 벤처육성정책에도 단기에 성과를 얻고자 하는 조급함이 엿보인다. 정부가 목표로 세운 올해 5% 경제성장과 40만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벤처붐을 조성하려 한다면 지난날 겪었던 잘못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벤처대책이 잘못되면 벤처기업을 정부지원에 의존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건전한 투자자들은 벤처기업이나 코스닥을 외면하고 투기꾼들은 또 다시 찾아온 기회라고 투기바람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이 걱정되는 것은 이번 벤처대책이 과거 벤처붐과 코스닥거품을 조장했던 대책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정책을 누가 마다하랴. 그러나 중소기업 육성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기에 앞서 대기업노조의 부당한 분규와 임금인상 등 중소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제거해 나가야한다. 경쟁력이나 생산성과 관계없이 ‘많이 놀고 많이 받겠다’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풍조도 중소기업을 크게 압박하는 요인이다.
중소기업의 인력난 해소대책도 서두르자. 엄청난 실업난 속에서도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중소기업 현장이다. 단기처방으로 대처할 일이 아니다. 공고와 전문대학을 지원, 기술인력을 양성하고 산·학 협력을 강화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해보자. 그리해서 중소기업에서 일할 사람을 키워내자. 그게 현실적인 중소기업 육성책이 아니겠는가.
류 동 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