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 보배로운 섬이라는 뜻의 진도는 한두 번 방문으로는 그 진가를 느낄 수 없다. 딱히 진도만을 지칭해서 말할 수는 없을 듯. 그 지역을 섭렵한다는 것은 잠시만의 여행으로는 느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금(남도 국악원), 토(향토 문화원)일에 열리는 흥겨운 민속공연과 진도 홍주가 어우러진 풍류가 있는 것은 둘째 치고 추사의 제자인 소치 허유 선생이 거하던 운림산방의 방문은 멋진 문화기행이 된다. 그 외에도 남도석성, 용장산성, 이순신 장군과 연관되는 벽파진 등등. 일일이 손으로 꼽기에도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팽목항에서는 조도, 관매도, 혈도 등 배여행도 즐길 수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름도 낯선 신기리의 한적함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곳에도 봄 향이 물씬 풍겨나고 있다.

이번 진도 방문은 해남 보해매원의 매화꽃을 보는 것이 핑계였지만 실제로는 그곳에 내려가 있는 베스트셀러 소설가 김상옥(061-542-3363)님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아는 출판사 직원들이 겸사겸사 진도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보다 하루 늦었다. 이미 섬을 향하고 있는 그들을 기다리면서 한갓지게 진도섬 여행을 떠난다. 진도에서 신비의 바닷길로 유명한 가계해수욕장은 이미 한차례 바닷길 축제를 열었다.
올해는 세 번에 걸쳐 축제를 하는데 오는 5월 24~25일과 7월에도 열린다고 한다. 진도군은 신비의 바닷길이 뚜렷이 드러나는 월별 날짜와 시각 등을 홈페이지에 게시해둔다(061-540-3136, tour.jindo.go.kr).
차를 달리면서 진도의 봄 향기를 만끽한다. 진도의 봄은 ‘파의 향’과 밀접해 있다. 진도 대파. 전국 파 생산지로 유명한 곳으로 한 겨울에도 푸른빛을 띠는 것이 파밭이다. 이맘때 진도에 들르면 흔하게 파 채취 작업을 하는 아낙들을 만날 수 있다. 단 묶어서 전국 곳곳으로 싣고 나갈 파. 일이 힘들 텐데도, 말은 순박하다.
운림산방으로 가는 길목에 첨찰산으로 오르는 길을 만나게 된다. 이미 아리랑 고갯길에서도 발아래로 펼쳐지는 경관에 놀라 차를 멈추고 있었다. 고갯마루 바로 옆에 지어 놓은 정자를 끼고 산 능선 길을 따라 들어간다.
진도에서 가장 높은 첨찰산(485m)은 운림산방 뒤에 있는 쌍계사를 거쳐 산행을 해야 했던 곳이다. 바쁜 일정 탓에 산행은 늘 뒤로 한 채였는데 정상부근까지 찻길이 생겨난 것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는 듯 길은 아스라이 능선을 휘돌아가고 있다. 우측으로 고개만 돌리면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가 내려다보인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바로 해남 도솔암을 찾았을 때와 흡사한 느낌이다. 해남 땅 끝을 한눈에 조망하던 그곳에 대한 감흥은 컸다.

진도의 봄은 푸른 빛
그런데 이곳에서도 그와 똑같은 모습이 펼쳐지는 것이다. 위치적으로는 분명히 일출을 볼 수 있는 그런 장소다. 길을 계속 휘돌아지다가 좌측으로 오르는 길하나가 나선다. ‘기상대 400m’. 부릉부릉,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주고 힘차게 올라가야만 할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고갯길을 넘어서면 우측에 봉수대가 있고 곧추 오르면 기상대다. 기상대 앞에 서니 이제는 더 이상 앞을 막는 장애물은 없다. 내 몸만 움직이면 동쪽은 물론 서남쪽의 바다까지 사방팔방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일출, 일몰은 언제든 볼 수 있으며 아름다움 발 밑 풍경까지 한꺼번에 안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곳인가.
내려오면서 봉수대로 오른다. 10여분도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 등산객들이 하나둘 눈에 띈다. 길목에서 토종 버찌나무를 발견한다. 어릴 적 ‘보리똥’이라 부르며 많이 따먹던 열매. 나이 들고서는 서양 버찌는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보리똥 열매는 본적이 없다. 그 나무가 해풍 맞으면서 벌써 열매를 달고 있다.
정상의 봉수대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는지 첨찰산을 봉화산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그곳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다. 등산객들은 친절하게 산행길 설명을 해주고 있다. 가는 곳마다 느끼는 것은 진도사람들은 친절하다는 것이다.
첨찰산 아래 운림산방이나 쌍계사의 상록수림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 하지만 진도에 들러 빼놓을 수 없는 명소라는 것만 각인시켜두면 될 일.
행여 토요일이라면 2시부터 시작되는 공연을 기억해두고 그렇지 않다면 서망권이나 팽목근처를 어슬렁 거려도 좋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벽파진도 용장산성과 함께 찾아도 좋다.
지치지 않을 만큼 진도를 돌아다니다가 조개체험지로 알려진 죽림에서 일행과 합류한다. 겨울에만 생기는 굴구이 촌이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 앞에는 포장마차가 몇 개 늘어서 있다.

달디 단 진도의 봄 맛
장흥 소등섬에서 보았던 굴구이판과는 모양이 틀리다. 둥근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굴구이판. 장작불이 지피는 아궁이를 만들어 그 위에 껍질 굴을 넣고 뚜껑 덮개가 달려 있다. 굴이 익어갈 동안 굴회를 먹는다. 새콤달콤한 굴회는 맛이 좋다. 그렇게 시작된 향연은 소설가 집에서도 연이어졌다.
이튿날 금골산으로 향한다. 소설가가 사는 마을이 바로 금골산을 뒷산으로 삼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이곳을 소개한 적이 있다. 첫 산행에 감격을 했었는데, 이번 방문 때도 역시 실망스럽지 않다. 산정에 오르면 일출을 볼 수도 있다.
소설가는 많이 외로워했다. 가는 사람들이 못내 아쉬운지 신기리 바닷가 낚시를 권했다. 신기리는 낚시꾼 이외에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겨울철 ‘백조’가 날아오는 군내호를 거쳐 가지만 아주 잠깐 찾아오는 철새를 이 즈음 만나기 어렵다.
신기리는 말 그래도 한적 그 자체다. 바닷가에 불을 지피고 삼겹살을 굽는다. 상회하나 없어서 차를 끌고 달려간 팻말 하나 없는 슈퍼. 봄 햇살 맞은 봄똥, 배추도 돈 받지 않고 주는 인심에 또 한번 감격이다. 여하튼 그들은 떠났다. 진도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장장 5시간 이상 버스를 탈 것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동안 너무나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저곳 다 보여주고, 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다 못 보면 어떠리. 또 다음을 기약하면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대중교통:진도행 버스는 서울(1일 4회), 광주(63회), 목포(19회)에서 각각 운행된다.
■자가 운전:서해안 고속도로 목포 나들목-영산강 하구언 쪽으로 좌회전해 해남 화원반도를 거쳐서 진도로 가면 된다. 혹은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 타고 오다 정읍에서 고창을 거쳐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도 시간을 단축시키는 방법 중 하나다.

◇사진설명 : 금골산은 전남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개골산이라는 다른 이름이 말해주듯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형성돼 ‘진도의 금강’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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