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의 봄은 주부들을 유혹하고 있다. 산허리, 무릎 구부리고 있어야만 버틸 수 있는 비탈진 능선에 온통 나물 밭이 펼쳐진다. 울릉취, 부지깽이(쑥부쟁이과), 명이나물(산마늘), 묵나물로 이용하는 삼나물, 고비, 국 끓여 먹는 향긋한 엉겅퀴까지 울릉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나물들이 지천이다. 어디 나물뿐이겠는가. 굵고 향이 진하면서 육질 부드러운 더덕, 그리고 노루귀, 제비꽃, 섬기린초, 섬채송화, 털머위 등 희귀식물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섬 전역. 인심과 사랑이 가득한 울릉도에 봄이 활짝 웃음 짓고 있다.

도동항 행남등대 해안산책로

울릉도 첫 도착지는 도동항. 배에 내리면 우선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는 일이다. 2km 남짓한 해안길. 폭풍 매미로 길이 완전 망가졌다가 최근에서야 개통되었다. 금방이라도 출렁거리는 짠 바닷물이 일렁거리며 도로를 점령하기도 하지만 펼쳐지는 풍광은 가히 환상적이다. 바닷길이 끝나고 이내 산길을 따라 오르면 행남등대가 나오고 그 밑에 저동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행남 등대는 살구나무 마을이라는 이 지역 지명에서 따온 말. 걸어 나올 때는 털머위 군락지를 따라 군청 쪽으로 난 산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길목에서 울릉도 토박이가 사는 양철집도 만난다. 마을 입구에 살구나무 한그루가 있어 ‘살구남’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원래 10가구 정도가 살았는데 지금은 두 집. 남편 없이 동서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땅을 부치며 살아간다는 한순이 할머니(74세). 20세의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되었다는 그녀는 관절이 아파 잘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할머니의 얼굴은 우리네 친정엄마와 많이도 닮았다. 시원한 물 한잔을 얻어 마시며 다시 숲길을 따라 걸으면 섬조릿대 터널도 만나고 섬개야광나무, 섬댕강나무(천연기념물 51호) 군락지도 지나친다. 바다와 숲이 이루는 때 묻지 않은 섬의 풍광에 한껏 매료되는 트레킹이다.

남양 남서 고분군과 일몰 전망대

울릉도 해안 도로(지방도 926번)를 자동차로 달리는 여행은 필수코스. 도동에서 서쪽 일주도로를 따라가는 길목에는 파란 신호에 맞춰 지나쳐야 하는 몇 개의 터널을 지난다. 바닷가에 거북이를 닮았다고 붙여진 ‘거북바위’가 있는 통구미 마을을 지나고 사자암바위가 있는 남양에 이른다. 남양에 이르면 나발동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울릉도 도로는 좁고 경사도가 심해 곳곳에 낙석과 사태위험이 높아서 웬만한 베테랑 운전자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날 길이 많다. 나발동 가는 길이 그렇다. 괜히 호기부리지 말고 가는 길목에 만나는 남서리 고분군(경상북도 기념물 제 72호)까지만 기억하자. 남서리 고분군은 도로변에서 500m 정도 오르면 된다. 오르는 길목에는 커다란 나무 밑에서 물이 풍풍 쏟아 내리는데, 땅에서 솟는 용천수다. 바가지로 입술을 축이고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집이 한 채 나오고 그 뒤로 수십 기의 고분이 들어서 있다. 울릉도에는 유명한 ‘현포 고분’이 있지만 남서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삼국시대 울릉도 고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 고분뿐만 아니라 주변에 펼쳐지는 풍치가 봄을 한껏 느끼게 해주고 있다. 양지바른 곳에 나물과 야생초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이방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흑염소 한 마리. 하냥 한갓진 봄 여정이다. 멀리 남양 마을과 바다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아스라이 눈앞에 다가서고 있다. 내려오는 길목에서 우측 산길로 오르면 일몰 전망대다. 서쪽 해안 길을 한눈에, 그리고 사자암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가 하루의 시름을 마감시킨다.

학포와 만물상 그리고 이규원

남양에서 계속 해안가를 타고 태하방면으로 가다보면 ‘학포 가는 길’이 있다. 바닷가로 가기 전 언덕길에 잠시 발길을 멈추어 보자. 그곳에 펼쳐지는 구릉진 나물 밭과 바다, 그리고 만물상까지. 나물 뜯어 보따리 이고 오기 힘들어 산악도르래를 설치했다. 땅을 개간하고 일구고 사는 사람들은 고역이지만 보는 이는 절묘한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아름다움을 더 만끽하기 위해 들어간 학포 마을. 검은 자갈이 길게 깔려 있는 그곳은 인적 끊어져 슈퍼조차 문을 닫아걸었다. 벤치에 앉아 파도소리에 취하고 봄 햇살에 취하니 손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울릉도의 학포와 만물상은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는 아름다운 장소다. 우산국 우해왕의 슬픈 왕비 풍미녀가 죽자 그가 아껴 기르던 학이 슬피 울며 날아와 앉은 곳이라 해 ‘학포’라 했다기도 하고 이 마을 뒷산에 학이 앉아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어 ‘학포’라 부르기도 한다고 붙여진 지명. 학의 날개 안에 안겨 있는 작은 마을, 지난날의 이력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너무도 조용하다. 이 마을은 울릉도 개척사 이규원이 첫 발을 내린 곳이다. 돌아 나오는 길목에서 허리가 도로변으로 반쯤이나 구부러진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난다. 귀가 어두워 거의 듣지 못하는 상황. 나리에서 태어나 4살에 이곳에 와서 발이 묶여 90세가 넘었다는 할아버지. 그도 이규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태하 신당과 황토구미, 등대 그리고 오징어

학포에서 해안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태하와 만난다. 태하에는 ‘성하신당’이 있다. 울릉군의 수호신으로 상징화된 동남동녀(童男童女)의 유래 전설이 서린 성하신당. 세월 속에 굵어진 곰솔나무가 자그마한 신당 앞을 가로막고 있다. 신당에 모셔진 어린 소녀와 소년. 이곳엔 자못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조 태종 때 울릉도 안무사로 파견된 김인우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 하자 큰 바람이 불어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바람이 수그러들기를 기다리던 중 김인우의 꿈속에 바다 신이 나타나 이 섬에 동남동녀를 남겨두고 가라는 계시를 내렸다. 이 계시에 따라 김인우는 어린 남녀아이 2명에게 일행이 묵던 곳에 필묵을 찾아오라고 한 후 몰래 떠나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김인우는 이에 죄의식을 느껴 다시 울릉도를 찾았으나 동남동녀는 이미 죽어 뼈만 남아 있었다. 김인우는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의 혼령을 달래기 위해 신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성하신당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2월 28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농작이나 어업의 풍년도 소원하고 위험한 해상작업의 안전도 빌고 있다. 신당을 벗어나 태하항 바닷가로 나가면 선착장 위쪽의 해안절벽 산책길이 있다. 황토구미, 태하등대로 가는 길목이다. 참고로 이곳은 울릉도의 특산물인 오징어가 맛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현포-추산에 이르는 낙조와 삼선암-현포에서 바라본 일출

태하에서 구불구불한 현포령 고갯길을 넘어서면서부터 북면의 해안 절경이 이어진다. 해안 길은 물론 노인봉, 송곳산 등의 기이한 산자락을 포인트 삼고 바다로는 공암, 딴바위, 삼선암, 관음도를 거쳐 길이 끊어지는 섬목에 이른다. 추산까지는 일몰이 가능하고 삼선암, 관음도, 섬목에서는 일출을 볼 수 있다. 물론 일출이야 석포나 내수전, 저동에서도 가능하지만 풍치는 이곳이 훨씬 낫다는 것을 기억해두면 좋을 듯. 또 하나 석포에서 내수전까지는 아직까지 해안길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산허리를 휘돌아 트레킹코스가 있다. 석포 독도 전망대에서 1시간여 정도 산허리를 돌아 트레킹을 하면 되는데, 가파름이 없고 나물, 희귀 야생초가 많아서 꼭 한번 해보길 권할 길이다.

기타 여행지

■봉래폭포:성인봉 중턱에서 용출해 내려오는 3단 폭포로 맑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이곳의 폭포수는 울릉도 주민의 상수원으로 사용될 만큼 수질이 좋은 곳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지금은 매미 폭풍의 영향 탓에 가는 길이 많이 망가졌다. 이곳까지 온 이상 빼놓기에는 아쉬운 곳이다.
■성인봉등산:성인봉(984m)은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가는 코스는 대원사스, KBS중계소, 안평전 코스로 나눌 수 있다. 안평전 코스가 최단거리지만 대중교통이 불편한 편. 정상까지 오름은 힘들지 않지만 정상을 기점으로 알봉 분지로 내려오는 길은 경사도가 심하다. 특히 아직까지 눈길이어서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알봉분지에 이르면 투막집을 만나고 나리분지에서는 굴피집이 있다.
■케이블카와 유람선 타기: 약수공원에서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왕복 9천원. 독도 박물관과 함께 연계하면 된다. 또 도동항에서는 자주 유람선이 운항된다. 섬 안쪽보다 다소 밋밋한 느낌을 주지만 끝까지 쫓아오는 갈매기 떼가 이채롭다.
■별미집: 울릉도는 지금 나물 천국이다. 울릉취, 산나물(명이나물이라고 함), 부지깽이, 전호 등등. 가는 식당 곳곳마다 반찬으로 차려 나온다. 엉겅퀴는 산약초해장국의 재료로 이용한다. 울릉도의 별미인 홍합 밥은 보배식당(054-791-2683)이 따개비밥과 약초해장국은 99식당(054-791-2287)이 괜찮다. 홍합밥, 따개비밥은 20-30분이 소요되므로 사전 예약이 필수. 또한 울릉도에서는 약소고기가 특별하다. 섬바디 등 약초를 먹고 자란 한우. 향우촌(054-791-8383, 0686)은 마블링이 많아서 고기가 고소하고 맛이 좋다. 밑반찬도 깔끔해 도시민들의 입맛에 잘 맞는다. 곰탕도 괜찮으며 늘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으므로 예약은 필수. 우성회식당(054-791-3127)은 한치물회가 괜찮다. 두꺼비 식당(054-791-1312)은 오징어 내장탕이 좋다. 성인봉 등반이나 나리분지쪽으로 여행을 할 경우에는 산마을 식당(054-791-4643)을 기억해야 한다. 산 마늘 듬뿍 넣은 토종닭 맛이 일미며 산채비빔밥이나 산채전, 그리고 호박씨로 만든 씨앗주가 인기다. 주인의 인심도 넉넉하다.
■숙박: 울릉도에서 가장 좋은 집으로 손꼽는 곳은 대아호텔(02-518-5000)이다. 마리나 관광호텔(054-791-0020)은 지은 지 오래돼 시설은 낙후돼 있지만 주인의 인심이 넉넉하다. 모텔로는 도동항에서는 칸(054-791-8500)이 괜찮고, 통구미에서는 거북모텔(054-791-0303)이 파도소리 들으며 잠들 수 있는 곳이다. 추산 쪽에서는 추산일가(054-791-7788)가 전망이 빼어나다. 가격은 펜션 수준이다. 황토방이라 방은 따뜻하다. 산마을에서도 민박 가능.
■울릉도 교통 포인트: 울릉도를 가기 위해서는 배편을 이용해야 한다. 묵호나 포항이 대표적인데 거리는 묵호가 훨씬 빠르지만 대신 차를 실을 수 없다. 하지만 차 싣는 가격이 왕복 40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차량 이동은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울릉도 깊숙이 전역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돌아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딱히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배편 문의: 포항여객선터미널:054-242-5111, 후포여객선터미널:054-787-2811, 묵호여객선터미널:033-531-5891, 울릉여객선터미널:054-791-0801. 후포항 이외에서는 하루 1회 정도 운항. 기타 자세한 문의사항은 울릉군청 문화관광과:(054-790-6425, 6420 메일:dokdo@ulleung.go.kr)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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