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하게 피어난 봄꽃이 땅에 뚝뚝 떨어지고 있다. 계절을 느낄 틈도 없이 눈앞에서 사라져 가버리는 봄꽃 향연. 꽃물결이 출렁거리듯 행락객들의 몸짓도 부산하다. 들녘에서 손쉽게 만나는 것은 상춘객들의 나물 뜯는 모습이다. 하냥 여유로운 봄 여행길. 몇 년의 세월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강화도로 향한다. 고려산(436m)에 피어난 진달래 군락지를 보기 위함이다. 그곳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몸을 맞이하고 있을까하는 기대감에 부푼 봄길 여행에 가슴 설렌다.

강화읍에 들어서면서 찾는 곳은 강화성당(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사적 제424호)이다. 읍내 언덕바지에 있는 한국 최초의 성당. 강화를 찾으면서도 늘 무심하게 지나쳤던 성당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젠가 사진으로 본 외관의 독특함이었다. 도저히 성당이라고 믿기지 않을 한옥건물. 흔히 볼 수 있는 기와집 형태로 된 성당이다. 벚꽃이 피어 꽃잎을 떨구고 있다. 찾는 이 없이 한가한 골목길. 열려진 문 안쪽으로 길게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국 최초의 성당 - 강화성당

조선시대 개화기에 지정된 전통가옥이 성공회유지재단 등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성베드로와 바울로성당’이라고도 한다. 1896년(고종 33)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성공회 초대 주교인 존 코르페(C. John Corfe:한국명 고요한)가 이곳에 한국 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정면 4칸, 측면 10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목골조를 사용하고 벽돌을 쌓아올린 기와집. 2층은 바닥이 없는 통층구조다.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본떠 지은 것이지만 외형상으로는 불교 사찰 분위기를 풍긴다. 굳게 닫힌 문. 틈새로도 안쪽을 엿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가톨릭. 토착화를 위해서 전통가옥에 맞춰 지은 건물에 야릇한 전율이 인다.
고려산을 가기 전에 잠시 고려궁지에 멈춘다. 고려궁지(사적 제133호)는 고종 19년 최우라는 신하의 건의로 강화도에 천도작업을 하여 21년 완성하여 개성 환도한 원종 11년까지 1232년부터 39년 동안 고려 궁궐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고려궁의 규모는 개성의 궁궐과 비슷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당시 건물의 기단과 돌계단, 그리고 궁터 뒤에 산성 터만 남아 있다. 궁터 잔디밭에 쉬고 있는 아낙들 사이로도 봄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전설의 산 - 고려산

진달래 군락지 들어가는 길목에서 잠시 고인돌군을 찾아 나선다. 넓은 터에는 전날 화려한 축제를 마무리 하는 사람들 사이로 군데군데 지석묘가 있다. 강화도에는 고려산(436m)을 중심으로 130여기가 분포되어 있어서 고려산 일원을 돌아다니면 흔하게 팻말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 부근리 고인돌이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알려져 있다.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 족장의 무덤. 고인돌은 크게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나뉘는데 이 고인돌은 그 중 북방식(탁자식)고인돌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느 곳에서 보는 것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돌덩이가 크다. 돌덩이가 클수록 부족의 힘이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
고인돌군을 나와서 백련사를 향해 올라간다. 진달래 군락지를 가려면 백련사를 통해 가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산 너머 적석사에서는 산행거리가 멀어서 대부분 이쪽으로 찾아든다. 축제기간에는 차량을 통제했지만 이제는 자유롭다. 그래도 차량들과 인파로 절집 주변은 아수라장이다. 축제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로 출렁거렸단다.
고려산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옛 명칭은 오련산(五蓮山)이다. 416년(고구려 장수왕 4)에 중국 동진의 천축조사가 이 산에 올라 다섯 색상의 연꽃이 피어 있는 오련지를 발견하였는데, 이 연꽃들을 하늘에 날려 이들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적석사)와 백련사, 청련사, 황련사, 흑련사(폐사)를 각각 세웠다고 한다.
그중 하나인 백련사. 고찰임을 보여주는 것은 색 바랜 단청과 수령 오래된 나무. 산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포장도로와 만나게 되고 이내 정상의 군부대 철탑 옆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진달래 군락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포장도로는 군부대가 만들어놓은 길로 일반인 통행은 불가능하다. 차량이 많이 올라와 있지만 군관계자들의 차량일터. 온 산하가 분홍빛으로 출렁거린다. 꽃길 사이로 인파도 함께 출렁거린다. 아마 이 글이 소개될 즈음에는 거의 꽃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진달래로 붉게 물든 산

진달래 군락지를 벗어나 적석사로 향한다. 처음 감흥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어차피 그때도 중창에 여념이 없던 절집이었다. 어울리지 않은 가람배치에 기분이 착잡해지고 정작 변하길 바랐던 낙조봉 주변은 듬성듬성한 철근을 깔아놓은 채로 남아 흉물스러운 그대로다.
적석사를 비껴 마니산이 있는 화도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애정 많았던 찻집도 영업을 안 한지 오래전. 밴댕이회를 제법 잘했던 선수포구 주변에 있는 알던 식당도 휴업 중. 강화에 들어설 때부터 너무나 변해버린 모습에 산뜻하지 못한 기분인 채로 남아 있었는데, 느낌은 그대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일지라도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더 이상 강화를 헤매고 싶은 생각을 저버리고 낙조를 보기 위해 장화리로 찾아든다.
해가 떨어지기까지 근 1-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그럼에도 일에 대한 입맛을 잃어버린 채로 감각까지 잊어버리게 된 것. 장화리의 식당 앞이 가장 아름답다지만 앞에는 해를 가리는 장애물이 많다.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바다 끝(장곶)으로 발길을 돌린다. 일출, 일몰 후에는 출입을 금한다는 군부대 팻말을 의식하면서 방죽 길을 따라 걷는다. 지는 햇살에 붉게 물이 든 진달래 군락지를 보면서 방죽에 한참을 앉아 있다. 여행에 많은 것을 부여하지 않으리라. 늘 행복한 여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오래전 저버린 생각이다. 밀물이 밀려들며 처얼썩 파도 소리 내는 사이로 해가 진다. 이곳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이리라고 되씹으면서...
■대중교통:서울 신촌정류장에서 강화읍행 시외버스 10분 간격 운행. 강화시외버스터미널(02-934-3447). 강화읍내에서 각방향 버스 이용.
■자가운전:88올림픽도로-78번 한강제방도로-김포시 양촌면 누산리-48번 국도-신강화대교-강화읍내-고려궁지쪽으로 직진. 고인돌 군 앞에서 팻말따라 좌회전하면 백련사.
■별미집과 숙박:강화는 봄철 벤댕이요리는 물론이고 장어구이, 꽃게장 등 해산물이 넉넉한 곳이다. 딱히 추천할 곳을 찾기보다는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이곳도 기억하세요

전등사-함허동천-정수사-분오리 돈대-동막해수욕장 해안길

나녀상이 있는 전등사에도 봄향이 가득하다. 또 함허대사가 도를 닦았다는 함허동천. 계곡과 야영장이 있어 볼거리며 멀지 않은 곳에 정수사가 있다. 절집 들어가는 계단 입구에는 피어난 벚꽃은 한마디로 장관. 동막해수욕장 동쪽 끝에 있는 분오리 돈대(인천유형문화재 제36호,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복숭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2-3년전에 포장이 되어 여행길이 많이 단축되었다. 나오는 길목은 초지대교를 이용해 김포쪽으로 바로 빠지면 된다. 대명포구와 덕포진이 있지만 지나치게 상업화 된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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