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허탈하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은 많다. 러시아 유전 의혹 또는 행담도 개발사업이 그렇거니와, 금연열풍과 담뱃값 인상으로 담배생산이 줄었고 소비자들이 로또 구입하느라 소비를 줄여 1분기 경제성장률이 낮아졌다는 설명을 들으니 안타까움을 넘어 허탈하고 슬퍼지는 것이다. 안톤 슈낙(Anton Schinack)이 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은 2.7%로 2분기에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미국과 일본은 1분기에 각각 3.5%, 5.3% 성장률(전분기 대비 연율기준)을 기록했다. 미국과 일본처럼 전분기 대비로 기준을 바꾸면 우리의 성장률은 고작 1.6%에 불과하다. 중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경쟁국가들의 성장률도 대부분 한국을 크게 앞질렀다.

장기침체 우려되는 경기
통계청의 4월 산업활동 조사에 따르면, 3~10개월 후의 경기상황을 예고해주는 경기선행지수와 기업 설비투자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현재의 경기수준을 보여주는 산업생산 증가율, 제조업 가동률, 도소매 판매도 제자리걸음이거나 증가율이 크게 낮아졌다.
4월 경상수지는 2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최근 열린우리당의 워크숍에서 “우리 경제시스템의 획기적인 개선을 이루지 못하면 일본처럼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했고, 한국경제 밀레니엄경제포럼에서는 “올해 5% 성장은 어렵다”고 했다.
나뭇잎 한둘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이미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았어야 했다. 이제라도 실상을 파악한 것은 그래도 다행이지만 구체적으로 내놓을 정책이 문제다. 그동안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낙관론으로 분칠하기에 바빴던 정부가 아니었던가.
한 부총리는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 쇼크로부터 완벽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다”라는 진단을 했다. 옳은 진단이다. IMF한파를 겪던 1999년 11월 19일,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선언했다. 그런 선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국정운영능력을 과시하고싶은 뜻이 있었겠지만 진짜 속내는 2000년 4월의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아니었을까.
환란의 근본원인은 한국경제의 경쟁력약화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을 조금 쌓은 것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 자랑했으니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를 놓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경제 완전 회복”이라고 했으니 경제난에 시달리는 국민은 할말을 잊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국가채무는 1997년 60조원에서 2004년말 현재 203조원을 넘었다. 참여정부 2년만에 70조 원을 증가시켰다. 앞으로 큰 돈 들어갈 곳은 즐비하다. 자주국방(앞으로 20년간 209조원), 농어촌 지원(10년간 119조원), 행정도시 건설은 물론 20여개의 신도시를 만들고 공공기관 177개를 옮기는 데 또 얼마가 들어갈지 모른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새만금 사업과 천성산 터널공사 등 공사가 중단된 5대 국책사업의 공사 지연에 따른 경제적 손실만도 4조1793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위기극복 정부 실천의지 필요
그동안 정부는 경제위기를 말하면 위기를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고 비난하고,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허구적 논리로 신행정수도와 행정도시건설계획을 밀어붙이고, 과거사 캐기, 북핵문제, 거기다가 각종 비리마저 불거지고 있으니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
정부는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없다. ‘꼭 해야할 일’이라도 우선순위에 따라 추진해야한다. 자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를 보는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지금부터라도 경제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경제시스템을 개선해서 경제를 제대로 챙겨라.
지금 불거지고 있는 러시아 유전의혹이나 행담도 개발사업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가 아닌가.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말만 할 게 아니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부터 제거하는 구체적 정책을 펴라.

류 동 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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