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하는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름으로 짙게 물들어 가고 있다. 땡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못자리에 여념 없는 농부들의 손길은 바쁘기만 하다. 그들의 바쁜 손짓은 객들에겐 늘 무심할 뿐이다. 멍한 눈빛사이로 하냥 농익은 봄바람이 한줌 스치면서 아카시아 달콤한 향이 코끝에 번져나가고 있다. 아카시아 꽃이 지면서 봄도 따라가고 흩어지고 있다. 지독하게 향기 농익어지면 아련한 향수에 몸부림치면서 산하로 발길을 옮긴다.
달콤한 아카시아 꽃 향이 봄바람에 전해오면서 땡볕도 시작된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횡성의 토지세트장을 향해 달려가는 날엔 애써 막 피기 시작한 아카시아 향기에 연연하고 있었다.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은 필자가 주말이면 TV곁에 다가간 이유는 ‘토지’에 대한 애정이었다. 초장부터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이내 그 다음이 궁금해지는 것은 드라마의 마력이다.

드라마 토지(土地)의 탄생지
이미 지난해 여름 하동의 토지세트장을 보고, ‘제대로 잘 지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횡성의 완공됨(지난해 겨울 세트장을 지을 때 방문했었다)은 어떨지 궁금하다. 토지세트장(횡성군 우천면)은 횡성 테마랜드(www.hsthemeland.com)라는 명칭으로 위탁받고 입장료(3,000원)를 받고 있다. 횡성군에서는 땅을, 테마랜드는 30억원에 달하는 건축비를 댔다고 한다. 토지의 마지막 촬영(2005년 5월16일)을 앞두고 있는 세트장 한 낯은 뜨겁기만 하다.
평일에도 단체로 찾아온 학생층, 중년층, 노인층, 가족동반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총 9만평의 대지 중 일부에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극의 중반부에 이르는 용정(하얼빈)씬과 막바지에 이르는 진주씬등을 찍는 건물들이 함께 붙어 있다.
드라마를 제법 많이 본 관계로 관심사는 높아진다. 야외 부분만 이곳에서 촬영하고 실내는 탄현 세트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건물 이외에는 안은 흉물스럽게도 보인다. 막바지에 이르면서 세트장이 아닌 염전, 돌무더기 등이 더 관심이 가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멋진 장소는 볼 수 없다. 세트장 뒤켠으로는 허브농장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고 앞으로 펜션 등 다양한 조형물이 들어설 예정이란다. 사장은 건축업자라는데, 이렇듯 돈 많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오늘이 마지막 촬영씬이 있단다. 촬영시간이 예상보다 늦어진다. 2시간 이상을 볼거리 없는 세트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스텝차량이 밀려들 무렵에 자리를 뜬다. 촬영이 진행된다고 해도, 연기자가 있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그늘하나 없는 세트장의 뙤약볕과 갈증은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된다. 3,000원이라는 입장료는 아깝다는 생각이다.
세트장을 나와 거침없이 후치악산쪽 으로 발길을 옮긴다. 안흥찐빵촌을 지나 강림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불어대는 바람의 느낌이 달라진다. 숲에서 내뿜은 산소덕분이리라. 땡볕도 눈부시게 푸르른 신록을 이겨내지 못한다. 바람결에 숲 향이 실려 온다.

왕자의 난과 태종대
강림을 지나 부곡지구에 이르면서 주변을 살핀다. 두어해 전 겨울, 이곳에 왔을 때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제 번듯하게 포장이 됐다. 비포장일 때보다 기분은 더 좋아진다. ‘노고소’도 그냥 지나치고 곧추 태종대 앞에 잠시 차를 멈췄다. 강림천변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태종대에는 조선 태종(이방원)과 그의 스승인 운곡에 대한 일화가 얽혀 있다. 태종이 왕위에 오른 뒤에 그의 어릴 적 스승인 운곡 원천석을 찾아 이곳에 왔으나 이른바 ‘왕자의 난’에 실망한 운곡은 태종을 만나주지 않고 피했던 것. 노고소는 운곡이 있는 곳을 알면서도 태종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노파가 죄책감으로 몸을 던졌다는 못이다.
언덕 위에 덩그러니 서 있는 정자를 뒤로 하고 안쪽으로 들어선다. 태종대 인근의 횡지암 계곡은 경치가 빼어나지만 출입이 금지돼 있다. 대신 도로변 계곡엔 수달래가 피기 시작한다. 길은 댐까지 연결되지만 곧은치(고든치)로 발길을 돌린다.

고든치계곡의 절경
마을을 비껴서면서 매표소(입장료:1,600원)가 나온다. 산 속에서는 무리지어 아낙들이 숲 속을 내려오면서 질경이를 뜯고 있다. 그저 잠시 고든치 계곡만 잠시 들러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숲속으로 들어가면서 마음은 바뀌기 시작한다. 널따란 계곡 옆으로 난 산길은 경사도가 없고 숲이 우거져 싱그러움이 온 몸을 감싸온다. 골 넓고 기암이 펼쳐진 계곡엔 우렁차게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새소리가 물소리에 묻혀질 정도다. 예전에는 강림, 부곡 주민들이 원주장을 걸어서 가던 계곡 오솔길이었다고 한다.
고든치까지 4km가 넘는 거리. 정상을 목적하지 않았지만 2km 정도는 충분히 걸은 것 같다. 해만 충분히 남았다면, 그리고 손에 삼각대만 없었어도 고든치를 향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잠시 사진을 찍으러 계곡 속으로 내려간다. 수도 없는 폭포 형상이 펼쳐지는 그곳에서 웅장한 부곡폭포가 숨겨져 있다. 지는 햇살이 폭포 위로 부서져 내리고 있다. 숲 사이로 안개가 걸린 듯 신령스럽게까지 느껴진다.
너무나 아름다운 숲 속에 흠뻑 빠져드니 세트장에 대한 미련은 사르르 사그라져 버린다. 시원한 물소리 듣고 넓은 바위에 앉아 오수를 즐기거나 책을 실컷 읽고 싶은 마음. 머지않아 또 이곳을 찾아오고 말리라.
■대중 교통 : 부곡으로 오는 버스 편이 하루 4회 정도 있다.
■자가 운전 : 영동고속도로 새말 IC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42번국도 이용. 10km 오면 안흥면. 안흥면 입구에서 강림팻말 따라 우회전해 주천강을 따라 8km 가면 횡성군 강림면. 계속 직진하면 고든치로 가는 마을이 나온다.
■별미집과 숙박 : 새말에서 안흥쪽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다 보면 길옆으로 ‘장미산장(033-342-2082)’ 이 있다. 횡성한우를 맛볼 수 있다. 안흥의 자그마한 읍내에는 이제 10여 곳이 넘는 찐빵집이 생겼다. 심순녀씨가 운영하는 찐빵(033-342-4460)집이 단팥 맛이 여느 집과 다르다. 강림에 있는 강림순대집(033-342-7148, 강림면 강림4리 수네너머 입구)이나 강원막국수 집이 있다. 부곡2리 마을 끝자락에 있는 치악산 송어양식장이 있다. 숙박은 민박집이 있다.
■여행포인트 : 강림에서 영월 수주(월현리)쪽으로 가다보면 도예공방인 응향원(033-342-1424)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통나무 학교(033-342- 9596-7)가 나오며 고갯길을 한참 올라가면 천문인마을(033-342-9023)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새로 시멘트 포장된 덕초현 고갯길을 넘어 새재를 지나면 안흥입구와 만난다. 특히 덕초현 고갯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칠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하지만 원시림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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