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간 경제경쟁은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치열하다. 경제전쟁을 치르는 대표선수는 기업이다. 국가의 경쟁력은 국토의 크기나 인구가 아니라 강한 기업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기업은 곧 국가’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성장률이 낮은데다 성장을 이끌 기업이 활력을 잃고 있는 게 문제다.
우리의 2002 월드컵 4강 신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짜릿하다. 축구강국들이 우리 앞에 무너졌다. 우리 선수들이 체력과 투지를 앞세워 쉬지 않고 뛰었기 때문이다. 경제경쟁도 스포츠와 다를 바 없다. 기업이 얼마나 열심히 뛰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우수한 선수로 구성된 팀이 이기듯이 우수한 기업들이 활약하는 경제는 성장을 지속하고 경쟁에서 이긴다.
올 상반기 성장률은 3%에 불과하다. 경쟁국들은 앞으로 달려나가는데 우리만 멈칫거린다. 400조원이 넘는 돈이 굴러다니지만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다.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뭉칫돈은 부동산으로 몰린다. 대통령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은 잡겠다”고 하지만, 부동산이 뛴 것은 행정도시, 공공기관 지방이전,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정책을 쏟아낸 결과가 아닌가?. 우리의 노동생산성은 대만의 66.2% 수준이고 시간당 임금은 대만보다 두 배나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류비도 중국이나 일본의 두 배다. 세계 각국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한다.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경쟁국은 앞으로, 우리는?”
우리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겠다는 소리만 요란하지 기업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게다가 일반 국민의 반(反)기업정서는 여간 심각하지 않다. 물론 기업의 책임이 가장 크다. 하지만 기업의 잘못된 행태(行態)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어서 기업에만 책임을 물어서 해결되지 않는다.
학교교육은 반기업정서를 부추기는 데 한몫 한다. 대학을 비롯한 각급 학교에서 기업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최근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 인식전환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프로그램에서 중고교 사회과목담당 선생님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각종 교과서(국어, 도덕·윤리, 사회, 경제)는 어떤가? 기업과 기업인들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지 않거나 잘못 설명하고 있다. 아무리 선생님들이 잘 가르치고 싶어도 뛰어넘을 수 없는 교과서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중소기업학회에서 연구한 결과를 한번 보자.

기업을 바로 보라
“내가 키가 크니까 내가 왕이야, 내가 몸집이 크니까 내가 어른이야” “오솔길의 길섶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작은 꽃들… 장미나 글라디올러스나 튤립 같은 꽃과 견주어 무엇 한가지 이겨낼 재간이 없다”는 표현에서 보듯 “큰 것은 좋고 우월한 것, 작은 것은 부족하고 열등한 것”이라는 규모에 대한 편견을 시사하는 사례는 여러 군데 나타난다. 중소기업은 취약해 보호가 필요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으로 표현돼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장사는 불쌍한 직업으로, 이윤추구행위를 속이는 행위로 인식케 하는가 하면 사업자들간의 경쟁을 부정적으로 본다. 이는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설명이다. 기업의 생산활동이나 경제발전은 환경파괴 내지 오염과 연결돼있고, 중소기업은 환경오염의 주체, 대기업은 외국상품을 수입해 치부하는 주체로 언급되고 있다.
부(富)의 축적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부각시켜 기업의 정상적인 생산 및 이윤추구활동보다 부차적인 사회봉사활동을 부각시키고 있다. 기업가와 사업관련 인물은 파렴치하고 부도덕하게 묘사되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자란다. 반기업정서를 교육현장에서 싹틔우고 있는 셈이다. 이런 교육으로 훌륭한 기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할 수 없다.
기업과 기업인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일자리를 늘리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고 한다면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겠는가? 언제까지 대표선수들의 발을 묶어놓거나 비난하면서 뛰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을 것인가?

류 동 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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