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옛부터 삼재(三才)라는 사상이 있어왔다. 천시(天時:때), 지리(地利:장소), 인화(人和)가 그것이다. 때는 장소의 이(利)에 미치지 못하고 장소의 利는 인화의 利를 따르지 못한다 했다. 무슨 사업이든 세가지 중 두가지를 갖춰야 성사가 되며 세가지를 모두 갖추면 크게 성공한다 했다.
은(殷)왕조의 주왕(紂王)은 중국사상 폭군의 대명사다. 잔인하기 짝이없는 포락이라는 형벌로 반대자를 무참하게 살해했기 때문에 殷의 존립기반인 호족(豪族)들이 殷을 반대해 돌아서고 그 반은(反殷)의 깃발을 들고 앞장 선것이 주(周)의 무왕(武王)이다.
B.C 1124년 무왕이 紂왕타도군을 이끌고 황하강변까지 진군했으나 한번 뒤를 돌아보고는 “아직 때가 아니다”하고 군을 철수했다. 한데 이듬해에도 황하강변에 이르러 “아직 때가 아니다”하고 회군했다. 그러자 장병들이 물었다. “때가 아니다 하셨는데 무슨 때입니까” 무왕이 “두고보면 알것이다”했다.
이듬해 즉 B.C 1122에 무왕이 세번째 紂왕타도군을 이끌고 황하강변으로 진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紂왕의 포악성이 더욱 심하고 수백명의 백성을 생매장했다며 활과 죽창을 가진 周의 백성들이 길가에서 기다리다가 무왕이 나타나자 “무왕만세!”를 외치며 곳곳에서 합류해 황하강변에 이르니 민병대가 만명에 달했다. 이때 무왕이 크게 말했다.
“이제야 때가 왔다. 우리 백성이 紂왕 타도전에 자진해서 참가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백성이 동의(同意)하지 않는 싸움은 승리할 수가 없다. 또 하나 우리 백성이 이 싸움에 스스로 나선것은 싸움의 핵심적 요소인 ‘인화’(人和)를 가져왔다. 인화 없이는 승리도 없다. 오늘은 진군을 멈추지 말고 바로 황하를 건너라!”
황하를 건너면 목야(牧野)라는 들이다. 이 목야라는 땅이 지리(地利)를 제공했다. 이 목야는 황하의 흐름인 동쪽으로 뻗어 있으며 황하를 건너서면 숲이 우거진 솔밭이 있어서 수만명이 숨을 수 있고 가까이 온 적군을 기습하기에 그만인 장소이다.
포악무도한 紂왕의 성은 목야의 동쪽, 조가(朝歌)에 있다. 紂왕은 무왕의 동태를 알고 대군을 목야로 진격시켰다. 그러나 은군(殷軍)은 정규군은 한사람도 없고 紂왕의 부하인 장군에 인솔됐다. 강제로 동원한 백성이기에 싸울생각은 전혀 없고 도망칠 기회만 노린다.
무왕이 목야의 숲에서 일제히 기습을 감행하니 은군은 팔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치기 바쁘고 오히려 무왕에게 길을 열어줬다. 무왕이 紂왕의 성을 포위하자 紂왕은 성에 불을 지르고 자살하고 말았다. (出典:<史記>)
때, 장소, 인화의 三大요소는 비즈니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대의 모든 기업이 알게 모르게 ‘三才’의 요소에 의해 성패가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세가지 중에서 ‘인화’가 핵심요소이며 아무리 때와 장소가 좋아도 ‘인화’가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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