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는 그래도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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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는 그래도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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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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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국민의 정부 이후 두드러진 사회현상의 하나는 ‘양극화’이다. 경제적 시각에서 사회계층의 양극화는 곧 중산층의 붕괴를 의미한다. 평온한 사회에 양극화의 파문을 일으킨 주범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정책의 논리이다. 오랜 관행에 뿌리 박혀 있던 경제사회적 관행들이 좀처럼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자 글로벌 시대를 핑계로, 경쟁력 강화를 핑계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핑계로, 열심히 뛰는 자를 돕는다는 핑계로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우리 사회의 균형은 여지없이 깨지기 시작했다. 선택과 집중을 내세운 체질개선의 논리에 기업도 못이기는 척 동의했다. ‘나는 선택될 수 있다’는 희망과 ‘우리 기업이 선택돼야 한다’는 착각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현실을 보면 선택되는 계층과 기업은 극히 일부분으로 한정돼 있고, 대다수 계층과 기업은 선택과 집중의 논리에서 제외됐거나 무관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또한 ‘집중’의 포커스가 어디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조차 없어서 ‘선택받은’ 자는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잘 하는 사람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본질이라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그 다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누가 선택받을 수 있는지, 집중을 받을 수 있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 지금까지의 모습으로는 ‘선택과 집중’ 수혜자를 소득측면에서 본다면 중산층이거나 하위층은 분명 아니다. 기업이라면 착실한 기업이어서는 안 되고, 대학이라면 내실에 충실하던 대학은 안 된다. 즉, ‘보통’의 생활과 경영을 하고 있던 중산층이나 기업이나 대학은 선택과 집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선택과 집중’의 오류
선택과정에서 로비가 있었는지의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선택받으려면 상위계층이어야 하고, 튼튼하고도 훌륭하고도 잘 나가는 기업 또는 대학이어야 한다. ‘기준’이 뭐냐라는 질문에 비난 받기 싫어서 언제나 ‘평가’를 내세운다. 평가결과는 뻔하며, 서열만 결정할 따름이다.
이미 ‘상층부’에 놓여 있는 최우수 집단을 대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니 결과는 불균형의 가속화와 경제좌표의 상실만 남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 아닌가? 우리나라의 ‘선택과 집중’ 논리는 그렇게 전개돼 왔다. 이제 선택된 자 또는 집중을 받은 쪽의 모습을 보자. 수혜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경쟁에서 분발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쉬운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자만에 빠져든다. 경쟁 상대들은 선택받지 못함으로써 저 멀리 밑바닥으로 추락해버린 상태이니 ‘사실상의 독과점’을 공인받은 셈이며, 과거보다 운신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편하게 됐다.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
결과적으로 중산층을 붕괴시켜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을 촉발시킨 주범인 동시에 시장원리를 가장 왜곡시키는 조치가 바로 ‘선택과 집중’의 논리가 아닐까?
양극화는 그래도 낫다. 단, 더 낫다는 전제는 균형잡힌 양극화일 때이다. 보통의 표현으로 양극화라면 그나마 상층부에 절반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균형의 양극화가 아니라 불균형 양극화, 그것도 피라미드형 양극화 때문이다. 즉, 극소수가 상층부의 한 극단을 차지하고 반대의 다른 한 극단에는 수많은 ‘하류집단’이 몰려 있는 것이다. 더욱이 중산층이 없어서 피라미드 구조물을 지탱할 능력이 힘겨울 뿐이다. 20:80의 법칙이라면 그나마 이해할만하다. 5:95의 비율로 ‘하방추락형 양극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필자의 지나친 편견때문일까?

20 : 80이 5 : 95 사회로
이러한 모습은 다양한 사회현상에서 사실로 입증된다. 소득계층, 소비측면, 부동산소유, 문화생활, 교육문제 등 어느 분야 하나라도 ‘총인구비중 삼각형, 총소득비중 역삼각형’ 모양의 양극화를 형성하지 않는 곳이 없다.
보험가입이나 연금 준비같은 사회안전망에 대해서도 양극화로 인해 하위계층은 여력이 없어서 준비 못하고, 상위계층은 불필요하다는 생각에 대비하지 않는다. 양 극단에 있는 집단은 서로 상대방이 자신들을 궁핍화시킨다고 탓한다. 증폭되는 사회갈등을 어떻게 극복할지 고민이 누적되는데도 위정자들은 관심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그 다음을 걱정해 봐야 할 때이다. 역시 소중한 우리의 기업 입장으로 돌아가 양극화 탈출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합법적이면서 합목적적인 수많은 제도가 기업을 돕는다고 ‘선택과 집중’을 이유로 신청하고, 평가하고, 선발하고, 지원하고는 있지만 정작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제도들은 얼마나 되는지 반문해 봐야 한다. 선택받지 못하는 기업이 부지기수로 더 많다는 사실을 직시해보자.

박 문 서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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