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승병은 선승이후구전하고 패병은 선전이후구승(勝兵 先勝而後求戰 敗兵 先戰而後求勝)’이라 했다. 이기는 군대는 승리할 태세를 갖추어 놓고 싸우며 지는 군대는 무작정 싸움을 시작해놓고 승리를 얻겠다고 허둥댄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중소기업정책 수립과 시행, 그리고 이에 대한 중소기업계의 대응행동을 보면 일을 벌여놓고 수습하는 식이 많았다. 선승이후구전을 하려면 무엇보다 니즈(needs) 파악부터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수요파악이 우선이다
기업들은 소비자 니즈를 조사하고 이에 맞추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한다. 마찬가지로 정부도 중소기업의 니즈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행정서비스 개발을 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은 업체수가 많고 지역, 업종, 규모, 시기에 따라 니즈가 너무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니즈 조사를 생략하면 안된다. 바로 이러한 니즈를 조사해 반영하는 것이 정책당국과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함께 협조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모든 시스템은 이용자 집단의 실질적 필요를 반영해 설계해야만 비로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시스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첫째, 니즈 조사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대기업들이 모여 있는 전경련같은 곳에서는 이런 일을 구태여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다르다. 중소기업의 대부분은 니즈를 표현할 방법과 채널이 없는 영세기업들이다. ‘중소기업은 외로운 존재’라는 점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의 현재 경제활동인구 2천4백만 중 몇 퍼센트가 이런 사람들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둘째, 중소기업 니즈의 구성항목을 표준화해 매년 정기적으로 측정하고 그 결과를 백서(白書)로 발간함으로써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현안과제와 취약점을 현장감 있게 전달하자는 것이다. 회의장에서 목소리 큰 사람의 말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 없는 다수의 니즈를 조사해 흐름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셋째, 지원니즈, 참여니즈, 개발니즈를 망라하는 등 조사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자금, 판로, 인력, 설비 등 미시적 차원의 니즈만 거론되었다. 인프라 전반에 대한 중소기업인들의 니즈도 파악돼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시스템은 거시적으로 경제정책, 제도, 행정서비스, 유관기관, 상공인단체,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으며 미시적으로 기업, 거래업체, 은행, 연구소 등 다양한 네트워크 속에 위치한다.
따라서 중소기업인들은 거시적으로 정부가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에 추가하도록 요구하고 싶은 사항, 삭제 사항, 업계·지역사회·전문직 사회와의 연결 등 네트워크 연결이 취약한 부분, 정보공유, 학습, 자기개발 니즈 등을 의식한다. 이러한 니즈들은 대부분 머리 속에 잠재해 있으며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생겼을 때만 불만으로 표출된다. 중소기업인들은 평소에 체계적으로 니즈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일관성 있는 정책 필요
우리는 종종 ‘정부가 헷갈리게 한다’는 업계의 불평을 듣는다. 어떤 때는 중소기업을 넘치게 우대하는 듯 하고 어떤 때는 멸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진실한 니즈를 파악해 니즈에 입각한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터진 다음 뒷수습하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깊어만 가는 내수부진, 과당경쟁, 인건비 상승, 원자재난, 낮은 가동률로 우울한 연말이다. 요즘같은 고통스러운 경제상황에서는 블루오션보다 콜린스의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에 나오는 고슴도치 전략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여우는 꽤가 많고 재빠르고 우왕좌왕한다. 고슴도치는 우둔한 모습이지만 핵심을 고수하고 꾸준히 전진한다. 우리 주변에 여우는 줄어들고 고슴도치가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이 재 관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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