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기업에서도 심복(心腹)은 한 사람이 보통이다. 결코 심복이 줄지어 나타나지 않는다. 생각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심복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챙겨보면 조직의 성격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그 임무 원리는 차이가 없다.
가령 기업 사장의 심복 조건은 경영전략의 수립에 참여하고, 전략의 총체적·전반적 상황을 검토 점검 하는 동시에 급변이 발생하면 즉시 해결하는 머리와 수완이 있고, 그러한 자신의 조치에 대한 자신과 판단력, 그리고 용기가 있어야 한다. 때문에 이렇게 유능한 사람이 많을 수 없다.
한편 참모 또는 모사(謀士)라 함은 지모(智謀)가 우수하고 사려 깊으며 예견력이 있고 판단이 정확해야 한다.
‘심복’은 한 사람이 유리하다. 최종적 결정을 할 때 심복의 복수는 의견이 갈라지기 쉬운 대신에 보좌하는 참모, 모사의 복수는 여러가지 지혜를 모을 수 있다.
‘心腹一人’의 모델이 漢왕조 초기의 큰 위기 때 등장했다. 유방고조(劉邦高祖)가 사망하자 처(妻) 여후(呂后) 일족의 전횡이 시작되더니 드디어 천하가 劉씨의 손에서 呂씨의 일족으로 넘어가려는 직전에 呂태후가 죽으니, 권세 있다는 고관이나 무장이 저마다 쿠데타를 일으켜 呂씨 일족을 죽이고 그중에는 자기가 황제가 되겠다는 자도 있었다.
이러한 혼란의 수습은 다음 황제가 결정돼야 하는데 마침 이때 대왕 항(代王 恒)에게 궁(宮)에서 황제로 결정됐으니 모셔오라는 사자(使者)들이 왔다. 代王의 군신(群臣)들과 七人의 모사(謀士)들이 머리를 맞대고 갈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그러면 代王 恒은 누구인가. 유방(劉邦:漢의 高祖)이 영양(榮陽)에서 진을 쳤을 때 직물공장에서 베짜는 박희(薄姬)라는 미녀가 마음에 들어 후궁(後宮)에 들여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代王 恒이다. 유방이 천하를 차지한 후 죽으니 呂后가 전횡을 하면서 남편의 후궁들을 잡아 수족을 절단하고 돼지우리에 쳐넣는 박해를 가했으나 박희는 아들 代王의 집에서 난을 피했다.
代王의 군신들은 代王이 입궁하면 살해할 음모가 있으니 못가게 했고, 모사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 송창(宋昌)이라는 포도대장이 代王 앞에 나서서 말했다.
“代王님의 입궁(入宮)을 반대하시나 신의 생각은 다릅니다. 呂씨 잔당이 있지만 이미 기세가 꺾였고, 궁중에는 우리편 신하들이 기세를 잡고 있을 것이니 代王님 차에 오르십시오. 군졸로 차를 호위하고 신이 차에 배승(陪乘)해 지휘 하겠나이다.”
“좋다. 그대 생각에 따르겠다”
代王 恒은 당당히 입궁해 제5대 황제 문제(文帝:BC180~157)가 됐다.
宋昌은 代王의 심복도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이날의 행동은 둘도 없는 代王의 ‘심복’이었고 漢의 위기를 보기좋게 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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