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보다 더 강한 칼바람이 한차례 온 대기를 훑어 지나갔다. 도심속 사람들은 이제 추위와 더위에 견디는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버린 듯하다. 그래도 겨울의 제 맛은 추위에 있는 것이라고 위안 삼을 수밖에 없는 일. 만사가 귀찮다고 방바닥에서만 뒹글 거리면 겨울추위야 벗어날 수 있겠지만 이 시간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고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를 부려봐야 할 것이다. 강추위가 밀려올 즈음에는 웬지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겨울철이면 유난히 파랗게 빛이 나는 동해바다를 향해 여행을 떠나본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를 향해 큰 소리를 치고나면 잠시나마 막힌 가슴이 트여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서 말이다.
동해는 지금 대게가 제철을 맞이했다. 대게하면 으레 영덕을 떠올리게 된다. 대게의 대명사처럼 돼 버린 영덕군의 강구항. 이른 아침부터 회항하는 고깃배들의 부산함과 몇 개의 고무 다라이를 앞에 두고 고기를 판매하는 아낙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수많은 갈매기떼와 일출이 어우러지면서 항구의 아침이 열린다. 그리고 영덕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장륙사와 화수루도 함께 연계해 둘러보면 유용한 여행이 될 듯하다.
장륙사와 화수루는 영덕군 영해에서 영양쪽으로 난 918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우측으로난 920번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왼쪽 창수면 갈천리로 들어가는 팻말이 나온다. 화수루는 단종 폐위시 외친척의 유일한 생존자인 권오봉 공이 유배돼 살던 곳으로 조선 숙종 19년에 창건돼 현재 지방문화재 82호로 지정돼 관리중이다. 현재는 안동 권씨 문중의 소유로 돼 있고 제사 건물로 이용하고 있다. 화수루는 원초적이면서 초기의 원형을 거의 완벽한 상태로 지니고 있다는 두 가지 특징이 돋보인다
2층 누마루 집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집형으로 보수나 개청 없이 지금까지 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가치가 높다.
이 화수루 옆에는 화수루와 같은 시기에 지어진 납작한 초가집이 한 채가 있다. 이 집은 화수루에 머무는 양반들을 시중하는 사람이 살도록 지은 집이다. 이 집은 구조가 경북 북부 지방에서 일반 양인이 살기에 알맞도록 지어졌다.
대체로 산간에서는 기온이 낮고 눈이 많이 때문에 집안을 하나의 닫힌 공간으로 꾸며서 열 손실을 최소로 줄이고 동선을 짧게 하는 구조가 발달했다.
강원도와 경북 산간에서 볼 수 있는 겹집 또는 양통집이다. 겹집이란 마당이 따로 없이 방과 방이 붙은 식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그래서 집안에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지방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돼 있다.
화수루에서 계속 산길을 따라 2.1km정도 가면 장륙사가 나온다. 구름이 산다는 운서산(창수면 갈천리)의 기슭에 겨울철 찾아오는 이 없어 고즈넉하기만 한 사찰이 나온다. 이 절집은 고려말 나옹선사가 창건한 곳으로 당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매우 번창했다.
이후 조선 세종 연간에 화재로 전소돼 그 후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때에도 병화를 입어 그뒤 1900년에 중수했다. 경내의 건물들 가운데 대웅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다.
장륙사의 대웅전 공사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대웅전을 중건한다는 소식에 병든 어머니를 봉양하던 목수가 어머니의 쾌유를 기원해 공사를 자원하게 됐다. 그러던 중 공사가 거의 끝나 네 기둥만 남겨 놓았을 때 어머니의 부음을 듣게 됐다. 목수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해 어머니가 소생하지 못했다고 해 종적을 감췄다. 이후 다른 목수가 마무리를 했으나 기술이 부족해 뱃머리집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대웅전은 조선 중기 때의 건물로 여겨지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 지붕집으로, 벽에는 재미있는 벽화들이 많이 그려져 있다. 흥원루, 산령각, 금당(대웅전), 홍련암,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특히 장륙사에는 조선 초기의 건칠보살좌상(국가지정보물 제993호)이 모셔져 있다. ‘건칠상’이라는 것은 기본틀을 만든 위에 종이를 여러 겹 덧붙여 만든 불상을 말한다. 그 위에 금칠을 했다.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은 지불 가운데 조성연대와 조성경위가 분명한 불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체 높이는 87cm다.
■대중교통 : 영해에서 장육사 행 시내버스 1시간마다 운행, 15분소요.
■자가운전 : 영덕에서 7번 국도 이용해 영해로 올라온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918번 지방도로를 따라 5.6km가면 창수면소재지인 신기리-삼거리에서 오른쪽 오촌리로 난 920번 지방도 이용. 8.2km가면 왼쪽에 화수루와 장륙사 가는 길이 나온다. 또는 새로 난 중앙고속도로 이용, 서안동IC를 통해 진보-창수-영해쪽으로 들어서면 된다. 창수쪽에는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의 배경지기도 하다.
■먹거리&숙박 : 강구항이나 여러 곳에서 대게를 맛볼 수 있다. 그중 울진의 백암온천 가는 초입에 있는 후포항 길목의 청풍회 식당(054-788-4044, 4144)은 전망도 좋고 깔끔한 곳이다. 또 영해에 있는 산해식당(054-732-2401)은 해물탕이 별미다. 또 고래불, 대진해수욕장에서는 오징어 등 해산물을 싼값에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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