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인 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희한한’분들이 많다.
성호정 송학식품 회장을 보자. 그는 파주에서 국수, 수제비 등 전통식품을 생산하는 기업인이다. 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학벌이나 재력 배경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키 161cm에 몸무게 58kg의 왜소한 체격의 그는 6남매의 장남으로 식구들의 먹을거리를 책임지기 위해 남들이 고등학교 다닐 나이에 뻥튀기장사를 했던 사람이다(나이 쉰이 넘어서야 가까스로 장로회총회신학교를 졸업하긴 했지만). 집안은 부친의 사업실패로 기울대로 기울어 원효로의 무허가 천막집에서 살았다.
그런 환경에서 신제품개발과 포장기술개발 등을 통해 햅쌀떡국, 사골떡국떡, 막국수, 쫄면, 고기만두 등 250여종의 전통식품을 생산해 남부럽지 않게 성공했다면 이제는 어깨를 펴고 떵떵거리고 지낼만 하다. 하지만 그는 국내 120개 고아원 양로원을 돕는데 힘을 쏟고 있다.

‘나눔의 문화’실천

그것도 인가받지 못한 허름한 시설만 찾아내서. 뿐만 아니라 북한, 볼리비아, 아제르바이잔 등 빈국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다. 국수를 통해 매일 수천명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다. 그에게 국수는 처음 시작한 사업이자 ‘생명의 양식’이다.
이동훈 성실타공 회장도 비슷하다. 그는 고아에서 국내 최대 타공업체 경영자로 성공한 기업인이다. 서울 성동교 부근 작은 돌다리인 살곶이다리옆 고수부지가 그가 어린 시절 움막을 짓고 살았던 보금자리다.
13세때 고아가 돼 신문배달과 구두배달을 거쳐 남들이 중학교에 다닐 나이인 15세때 세 번째 직업인 중소기업 사환으로 취직했던 그는 이제 철판에 구멍을 뚫는 타공제품으로 국내 1인자가 됐다.
서울 대방동과 경기도 이천과 평택 그리고 시화공단등 4곳에 번듯한 공장을 갖고 있다. 이들 공장은 요즘과 같은 불경기에도 하루 3시간씩 잔업을 한다.
그 역시 먹고 살만해졌으면 이제 이른바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할텐데 그는 도리어 낮은 곳만 찾아다니고 있다.
본사가 있는 대방동 주변의 가난한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나눠주고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 등을 찾아다닌다. 고아들 10여명을 후원하고 있기도 하다. 그가 이들을 돕는 것은 배고팠던 시절“형편이 나아지면 내가 남들을 도와주겠다”고 혼자 결심한 내용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전동블라인드와 롤스크린 등을 생산해서 60여개국에 수출하는 코인씨앤엠의 이계원 사장 역시 제품개발과 생산 수출 등으로 바쁘지만 주말 등 틈나는대로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는다.
국내 최대 부엌용 레인지후드업체를 일군 이수문 하츠 사장은 주말마다 서울 동숭동을 찾는다. 안팔린 연극표를 많이 사주고 연극을 관람한뒤 배고픈 연극인들과 함께 인근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기울인다.
40여년간 클라리넷을 불어왔고 경기고와 서울대 공대 연극반에서 활동을 해온 이사장은 한국의 연극 그리고 뮤지컬이 세계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는 기업인이다. 그는 창작뮤지컬 명성황후와 겨울나그네를 탄생시킨 주역중 한명이기도 하다.

기업인에 대한 인식전환을

이들뿐 아니다. 소리없이 묵묵히 좋은 일을 하는 중소기업인들이 의외로 많다. 자기 지분을 임직원들에게 모두 물려주고 쓰레기줍는 일로 여생을 보내고 있는 박용진 전 이디 사장, 지역사회의 음악발전을 돕는 기업인, 잘못된 길로 들어선 청소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기업인 등등.
고용을 창출하고 수출역군으로 뛰고 있을 뿐 아니라 음지에서 좋은 일을 하는 중소기업인들을 볼 때 이제는 중소기업인들을 존경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수많은 중소기업인들의 힘을 얻어 다시 뛸 수 있도록….

김 낙 훈
한경비즈니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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