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산(584m)은 전북 순창군 팔덕면과 전라남도 담양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전북과 전남을 가로지르는 이 산은 필자의 고향과 인접해 있다. 필자의 고향인 순창군 금과면 방축리라는 자그마한 마을도 전북과 전남의 경계지점으로 검문소가 있다. 관할 도청 전주보다는 광주가 더 가까운 곳. 고향집에서 가장 내로라하는 산이 강천산이다.
담양의 메타스퀘아 길을 지나 자운영꽃밭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잠시 고향집에 들렀다가 오후시간에는 강천산으로 나선다.
가는 길목에서 순창 고추장 단지를 찾는다. 여러 한옥집이 밀집돼 있어 딱히 추천할 수 없는 고추장 단지. 왠지 모를 익숙한 간판들이 눈에 띈다. 평상에 앉아 있는 3~4명의 아낙들 사이로 털썩 주저앉아 주절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다.
초등학교 이야기를 했더니 ‘몇 회냐’고 묻는 아낙. 하지만 이미 필자의 기억 속에는 초등학교에 대한 기억은 사라진지 오래다. 어쩌면 내게 있어 고향도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야기 과정 중에서 필자의 돌아가신 아버지 존함을 댔더니 금세 ‘부잣집 딸이었네’한다. 20여년의 긴 세월에서도 아버지는 아직도 사람들 머릿속에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갑자기 가슴 한 편이 쏴하게 미어진다. 고향이 잊혀진 것이 아니라 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고추장 단지를 벗어나 강천사 가는 길목에서도 메타스퀘아 길이 길게 이어진다. 고추장 단지 갈림길에서 7km 거리. 예전에 그리도 멀게 느껴지던 길이 이제는 너무나 짧다. 대학 1년 때 이곳엔 허물어져가는 집 두 채 뿐이었다. 겨울이면 온 산하는 하얗게 눈에 뒤덮였고, 동네 주민은 커다란 망치로 바위를 두드려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았다. 이젠 추억을 떠올리고, 예전과 비교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지만 생각은 추억만 더듬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강천산이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때가 1981년으로 국내에서는 최초였단다. 필자는 당시 대학 1년 때다. 그때부터 정확히 2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변해도 두 번 이상이나 변했는데, 어찌 사고는 그때에 멈추어 변하지 않는 것인지? 상가를 기점으로 더 이상 차량 통행은 불가능 하다.
이곳은 웰빙의 붐을 타고 평평한 산책로에 모래를 뿌려 ‘맨발 트레킹’ 코스를 만들어 놓았다. 무구한 세월동안 가꾼 덕분에 숲은 많이 우거졌다. 애기 단풍이 유난히 많아 가을 단풍이 멋질 것이라는 것도 이번 여행길에 새삼 깨달은 것이다.
입구에서 못 보던 병풍폭포를 만난다. 원래 강천산은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해 용천산이라 불렸다. 노령산맥에 속하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으로 기암이 많지만 폭포는 없었다. 깎아지른 듯한 검은 틱틱한 암석에 인공으로 폭포를 만든 것이다.
계곡은 계속 이어지고 신록은 나날이 푸르러진다.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산책을 나선 사람들. 계곡의 다슬기나 물고기를 바라보며 30여분 정도(1.6km)정도 걸었을까 하는 지점에서 강천사 절집을 만난다.
오래전 허물어갈 듯한 절집에서는 행자의 목탁소리와 염불 외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10년차 이 절집을 지키고 있는 주지가 나름대로 건물을 만들어 규모가 커졌다.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887년)때 도선국사가 세운 고찰로 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92호)이 있다. 바로 앞에는 삼인대(전북유형문화재 27호)가 있다. 삼인대는 조선 중종(1506-1544)때 순창군수 김정과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유옥 세 사람이 이 곳에 모여 중종의 폐비 신씨 복위를 상소하는 글을 썼던 곳으로 관직으로부터 추방과 죽음을 각오한 나머지 직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었다고 해 후인들이 사당을 지어 삼인대라 부르고 제향을 지내던 곳이다.
삼인대를 지나면 사찰의 누군가가 심었다는 모과나무(전라북도기념물 97호)가 있다. 홍화정 앞에서 구름다리와 전망대 가는 길이 나뉜다. 구름다리와 전망대는 시간 관계상 오르지 못하고 곧추 직진해 목적지인 구장군폭포에 산행 종지부를 찍었다. 더 오르면 담양의 유명한 광덕산(565m)·산성산(603m)과 능선으로 이어진다.
구장군 폭포는 커다란 암벽에 세 줄기의 폭포줄기가 쏟아지는데 높이가 120m나 된다. 주변은 새로 공사를 했는지, 정자와 다리가 놓여 있고 흙은 다듬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팻말은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폭포가 있는 것처럼 표기가 돼 있다. “옛날 마한시대에 혈맹을 맺은 아홉 명의 장수가 전장에서 패한 후 이곳에 이르러 자결하려는 순간 차라리 자결할 바에는 차라리 싸우다 죽자는 비장한 각오로 다시 싸워 승리를 거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어릴 적 강천산의 유명 폭포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내려오면서 강천사 돌담위로 모습을 드러낸 강천사 주지스님과 얼굴을 맞닥뜨렸다. ‘원래 폭포가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이 산은 바위산이라 폭포가 생길 수 없는 곳이라는 답변. 그런 유서 깊은 폭포였다면 어찌 모를 수가 있었겠는가? 여튼 웅장하긴 하다.
해가 져서 서둘러 하산해 매표소 근처에 다다랐을 때 하얗게 부셔지던 병풍 폭포 물줄기는 사라지고 검은 바위만 촉촉이 젖어 있을 뿐이다. 인공폭포의 실체는 왠지 허무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만 꾸몄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본다. ‘이 정도면 누구든 사랑할 수 있는 여행지니, 이제 그만 꾸미고 멋을 내라고. 더 치장하면 오히려 자연미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심이 생긴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산행코스 : 강천산매표소-강천사까지 1.6km 정도. 홍화교에서 구름다리(높이 50m. 길이 75m)-가파른 바위길 20여분 산행하면 신선봉 전망대에 이른다.
■입장료 : 어른(1,000원), 어린이(400원)/주차료:승용차(2,500원)
■대중교통 : 서울-순창간 고속버스는 하루 2회 수준. 순창읍내에서 강천산까지 군내버스와 직행버스가 운행. 순창시외버스터미널 (063-653-2186).
■자가운전 : 순창읍내 4거리에서 우회전해 담양 방면 24번 국도로 2.8km. 백산리(고추장 단지 부근)에서 우회전 793번 지방도로로 7km 지점. 강천저수지를 끼고 좌회전해 강천산 진입로/호남고속도로-전주IC-전주외곽도로-17번 국도-임실-30번국도-덕치- 27번 국도 -순창
■문의 : 강천산 군립공원 관리사무소(063-650-1533, 652-5458), 순창군청 문화관광과(063-650-1464)
■여행포인트 : 1일과 6일이 순창 재래장이 서는 날. 장터구경도 좋고 암뽕 순대국 한 그릇으로 요기를 해도 정취가 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