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간 관계에서 ‘상생협력’은 쉽지 않은 단어이다. ‘상생협력’의 터전은 ‘공정거래’와 ‘상호신뢰’인데 우리의 경우 두 가지 모두의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다. 공정거래는 법 질서적 규율에 의한 정부의 영역이고 상생협력은 기업 자율의 몫이다.
위탁 대기업과 수탁 중소기업이 대등한 관계에서 거래하고 협력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거래 질서가 확립돼야 한다. 대기업 집단의 계열사간 내부 거래가 독립 중소기업의 판로를 제약하거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사례가 적극적으로 방지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기업 간에 상호 기여함으로써 협력 이전에 비해 각자의 매출액이나 이익이 증진돼 동반, 발전하는 관계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일방이 타방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간에 기여하는 관계이다.

공정·투명이 전제돼야

특히 정보와 지식, 기술의 교류,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 노력이 상생협력 행동의 본질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납품 단가나 지급 조건은 거래 기업간 경쟁과 협상의 결과이지 상생협력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다. 공정거래와 신뢰 형성을 기반으로 주요 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도록 관련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지난 해 정부가 발표한 상생협력 정책의 3대 목표는 공정하고 호혜적인 파트너십 구축, 중소기업의 자립 능력 제고, 지속적인 상생협력 이행확보 체계 구축의 세 가지이었다. 그것은 대기업과 거래 중소기업이 가야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기업 현장의 현실은 이와 같은 목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현재 ‘하도급법’에 의거, 대·중소기업간 공정거래를 규율하고 있으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서면조사 결과는 아직도 불공정 행위 비율이 전체의 50%를 상회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면 계약, 거래 계약서 미교부 등 거래 투명성은 확립되지 않았고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 남용행위가 상존하고 있다.
대·중소기업간 신뢰의 형성이 미흡하며 기업간 정보 및 지식의 교류, 공동 기술 개발의 사례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의 대·중소기업 관계는 공정거래 질서가 정착되지 못한 채 한편으로는 대기업이 거래 중소기업을 협력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이중적, 모순적 상황에 있는 것이다. 대기업이 거래 중소기업에게 대가 없이 자금이나 원재료 등을 지원한다면 그것은 대기업 손익계산서에 원가로서 계상되고, 수익률을 압박해 다시 납품 단가를 인하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아직도 ‘대기업의 횡포가 여전하다’, ‘대기업 이익이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다’는 중소기업의 반응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경제의 글로벌화는 일반적으로 경제 주체간 성과 격차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우리 경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발전한 역사를 지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의 심화는 이러한 구조적 요인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와 동반 성장은 이러한 구조적 요인에 대한 고민과 근본적인 개선을 필요로 한다. 우월적 지위에서 중소기업과 거래해온 대기업의 행태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의 우월 의식문제

구조적으로 형성돼 관습적으로 지속된 관행은 구조적인 관성(structural inertia)을 지니기 때문이다. 구조적 관성을 극복하는 혁신이 있어야 관행과 현상의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여호와의 것은 여호와에게’라는 말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성과 격차의 문제는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급할 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쉽지 않은 만큼 단기적인 방안으로 급하게 성과를 얻으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근본적인 원인을 성찰해 구조적인 개선을 이루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기업청 등 정부 8개 부처가 대·중소기업 협력 문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업무협력 관계를 형성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기업들의 상생협력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 보다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 정부가 할 일과 기업에게 맡 길 일에 대한 성찰과 대안이 포함되기를 기대한다.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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