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에 빨간 불이 켜진지는 오래 전이다. 내년 경제는 경제성장률 둔화와 경상수지 적자반전으로 올해보다 더 악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년 대통령선거전에서는 여야후보를 불문하고 경제 살리겠다는 공약을 쏟아낼 것이다. 먹고살기에 지친 서민들은 말의 성찬(盛饌)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울지 모른다.

정치가 경제 발목 잡아

앨빈 토플러는 미국사회를 두고 “기업은 시속 100마일로 달리는데 노조는 30, 정부는 26, 정치권은 3마일로 거북이걸음을 한다. 정부의 관료주의, 공장형 학교교육, 봉건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권이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라면 기업의 발목을 잡는 관료주의, 평준화에 매몰돼 붕괴되고 있는 공교육,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경직적이고 전투적인 노조문화, 느린 것은 고사하고 방향조차 엉망인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을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을 보면 2030년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9,000달러에 이르고 먹을 것은 물론 집·병원비·교육비·육아비·노후걱정을 안 해도 되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가슴이 벅찰 것 같은 미래청사진에 국민의 가슴은 오히려 답답하다. 비전 실현에 들어갈 비용 1100조원~1600조원의 확보방안도 마련하지 않았고, 더욱이 누가 어떻게 그런 세상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그림이 없다. 제대로 된 비전이라면 국민에게 땀을 요구하고 고통을 참아 달라는 메시지는 마땅히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미래는 그저 오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2030년 비전제시에 앞서 경제성장과 기업의 발목을 잡는 정책과 제도부터 당장 바꾸는 게 옳다. 경제가 뻗어나려면 기업이나 개인에게 일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야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회원국 평균의 38%, 미국과 일본에 비해서는 4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생산성으로 선진국으로 가겠다고 한다. 덜컹거리는 달구지 끌고 고속도로 달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장속도가 떨어지는 한국경제의 조로(早老)증세는 기업의 투자부진 때문에 나타난다. 기업이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에 대해 김인호 중소기업연구원장은 “문제는 정치야, 바보야”(한국경제신문 8/24일자 칼럼)라고 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빌 클린턴의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선거구호를 인용해서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기업인이 기업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치가 제 역할만 해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일본의 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최근 “한국, 이대로 가면 중국에 잡아먹힌다”고 했고, 한국경제 전문가로 알려진 엔디 시에 모건스탠리 수석에코노미스트는 “한국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데 실패한다면 중국의 일개 변방이 되거나 필리핀 같은 빈국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기업인 동기부여 부터 하자

중국 푸단대 허시유 교수는 “한국의 집권세력은 미래보다 과거에 더 정력을 쏟는 것 같고 분배를 강조하는 것은 지나친 평등주의와 연결된 문제이며… 평등주의를 강조하고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성장을 위한 효율을 저하시킨다”고 했다. 우리는 중국의 교수에게서 이런 말까지 듣게 됐다.
연세대 ‘노벨포럼’ 참가차 방한한 로버트 먼델 콜럼비아대 교수는 “유럽 국가들이 복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국가 부도사태를 맞았다. 한국은 지탱할 수 있는 수준의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현재의 재벌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벤처와 신생기업을 활성화시키는 등 중소기업육성에 힘써야한다”고 권고한다.
이제 정신 좀 차리자.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경제성장을 가볍게 여기면서 실패한 유럽 국가들의 복지정책을 뒤좇아 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국가채무는 올해 280조원, 내년이면 300조원이 넘는다. 나라경제가 거덜 날 수 있는데도 무리하게 국책사업을 벌이고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건 부도수표를 남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지금은 하루 늦으면 1년 뒤쳐지는 스피드시대다. 우리 사회 어디를 봐도 미래를 향해 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정책방향을 바꾸지 않고 밀어붙이면 교통사고 가능성만 키운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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