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대표적인 명소는 두륜산(703m)의 대흥사. 몇 해 전부터 가을철이면 단풍축제(11월2일-4일까지)를 열고 있다. 바닷가가 인접해 있고 특별한 고산이 없는 해남 땅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단풍여행지. 단풍이 빼어난 곳은 아니지만 숲이 우거져 있어서 가을과 초겨울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손색없다. 단풍축제를 비롯해서 우리나라 다도의 대표인물인 초의선사를 기리는 ‘초의문화제(11월 4일-6일까지)’도 함께 열린다. 특히 두륜산은 힘겹지 않은 산행지로도 유명한데 여러 코스 중에서 북암의 마애불까지 트레킹이 괜찮다. 북암을 거쳐 하산 길에는 일지암을 연계하면 충분하게 걷게 된다.

가을철 해남 땅에 대한 취재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천관산 억새 군락지에 오르던 중에 만난 등산객이 두륜산 북암의 마애불에 대한 정보를 준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방팔방에 부처님이 새겨진 독특한 마애불이라는 것이다. 순전히 돌길을 올라가야 한다는 말과 함께 호기심을 자극한다. 새로운 정보를 얻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

>> 갈대와 철새의 고천암호

이왕 해남 땅에 발을 내딛었으니 우선 갈대와 철새로 유명한 고천암호를 들러봐야 할 것 같다. 겨울이 아니고서는 특별히 볼 것 없었던 고천암호 주변. 전날 무서리가 내리고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 새벽 공기가 차다. 일교차가 커서인지 호수 주변에는 뽀얀 물안개가 아침 햇살에 빠르게 번지고 있다. 무럭무럭 피어나는 물안개가 도로까지 점령해 한치 앞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든다.
간간히 시야가 밝아지는 부근에는 아침 햇살에 수줍은 듯 갈대가 고개를 숙인 채 모습을 드러낸다. 서편제, 살인의 추억, 청풍명월 등 영화촬영이나 드라마, CF촬영지로 이용됐다는 갈대숲. 고천암호의 갈대는 호수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다.
처음 도착한 사람은 호수가 어디 있나 하고 두리번거릴 정도다. 철새는 차체하고도 광대한 갈대숲이 아름답기만 하다. 안개에 뒤덮인 도로를 따라 수문에 도착하니 무수히 많은 오리 떼가 아침먹이를 찾느라 분주하다. 정작 새 이름도, 종류도 구분되지 않고, 원하는 군무 떼도 보여주질 않는다. 인기척은 어찌 알았는지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는 무심한 철새 떼다. 11월 중순부터 시작해 이듬해 봄까지 이들을 만날 수 있다. 고천암호 일대는 몇 해 전부터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철새 떼가 많아서 농민들은 울상이라고 하니 이상과 현실은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인다.

>> 남도의 단풍-두륜산

고천암호를 벗어나 두륜산으로 향한다. 두륜산의 단풍이 아름답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물론 대흥사 들어가는 입구의 오리 숲이라 불리는 활엽수 길이 빽빽하게 들어선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이곳은 늘 봄 동백꽃이 피어날 때 찾는 여행지가 아니었던가? 휴일이면서 단풍축제까지 겹쳐있어 사람으로 북적거릴 것을 감안해 일찍 서두른다.
먹거리 단지에서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운행하고 있지만 어차피 북암까지만 오를 생각이다. 아름다운 오리숲길을 지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발 한발 절집으로 향한다.
대흥사는 달리 대둔사라고도 불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이다. 임진왜란 시절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사명대사 부도를 비롯해 52기의 부도가 모셔진 부도전을 지나면 일주문이다. 거대한 가람 대흥사. 평상시라면 대충 절집만 들러보고 다른 코스를 향해 달려 나왔을 터다. 주마간산으로 절집만 들러보고 떠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절집에는 마침 초의선사 차축제가 있어서 곳곳에 천막을 치고 차 시음을 하고 있다.
중국인이 직접 와서 판매하고 있는 반발효 우롱차. 차 맛이 좋다. 또 연꽃을 우려낸 연꽃차를 비롯해 여럿 있다.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다도인들의 모습도 볼거리다.
경내는 등산객, 관광객들로 인산인해. 두륜산은 대부분 산행코스가 험하지 않아 2-3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곳. 산행은 서산대사유물관에서 왼쪽 대광명전(표충사)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면 된다. 입구에 등산로가 표시가 있다. 조금 오르면 초의선사가 거했던 일지암과 북암길이 나뉜다. 왼편 북암길은 의외로 등산객들이 많지 않다.

>> 비천상과 마애불

초입은 경사가 급하고 돌이 많다. 마치 계곡 길을 걷는 것처럼 굵은 돌이 많이 박혀 있다. 40여분 정도(1km가 조금 넘는 거리) 오르면 돌계단이 나선다. 돌계단 너머로 북암의 가람이 언뜻 비친다. 계단을 타고 오르면 평평한 공간에 생각보다 큰 가람이 들어앉았다. 차량 통행도 불가능한 지역에 큰 암자가 지어진 것이 못내 실망감을 일게 한다.
절집 주변에는 등산객들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기도 하고 물을 마셔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원하는 마애불(보물 제 48호)엔 불사중인 듯 비닐막이 쳐 있다.
비닐막 안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했다는 4.2m에 달하는 마애불이 우두커니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원래는 마애불뿐이었다가 보수공사 중에 비천상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대충 만들어놓은 전각에 가려진 비천상이 드러난 것. 이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면서 유명해진 마애불이다. 이 마애불은 나라 안의 큰일이 있을 때면 땀을 흘린다고 한다. 마애불에서 약 30m 오른쪽에 고려초기의 석탑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301호)이 있다.
이곳에서 두륜봉(672m) 정상까지는 1.3km정도. 북암은 거의 중간지점이다. 정상의 여덟 개 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있어서 절경이라는 하산객들의 말은 뒤로 한 채 미련 없이 하산한다.
정상에서는 서해안과 남해안 곳곳의 다도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경은 또 기회가 있겠지. 하산 길은 오던 길과 반대 길을 택한다. 진불암 가는 길은 간과하고 일지암을 잠시 찾기로 한다. 갈림길에서 300m만 오르면 되는 길이지만 오름은 늘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초의선사가 살았다는 초막은 그대로다. 초막 앞에 심어 놓은 차 밭과 대나무를 이어 만든 앙증맞은 약수터를 들러보고 하산. 비록 일부분만 본 두륜산의 가을이지만 욕심 부리지 않은 것도 여행 방법의 하나다. 그래도 절집만 구경하고 돌아서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자가운전 : 호남고속도로 광산 나들목을 거쳐 영암, 나주 강진(성전)을 거쳐 해남으로 들어서거나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 목포-해남을 이용해도 괜찮다. 해남 읍에서 팻말이 잘 나있다.
■추천맛집 : 해남읍내의 천일식당(061-536-4001)은 떡갈비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천변식당(061-536-2649)은 추어탕과 짱뚱어탕으로 해남사람에게 소문난 집. 천변 길 건너에 있는 주막식당(061-533-5377)은 회종류를 파는데 계절 별미인 세발낙지도 있어 간단하게 술 한 잔 하기에 좋다. 숙박은 유선장이나 해남읍내의 모텔 이용. 또는 대선찜질사우나(061-535-3700)를 이용. 두륜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061-530-5543).
■여행포인트 : 낙조와 일출도 빼놓을 수 없다. 땅 끝이나 달마산 도솔봉을 찾으면 된다. 또 우항리 공룡자연사 유적지나 마산면 당두리 간척지에도 철새 떼가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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