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중소기업 전반의 경쟁력 및 생산성 향상을 견인하기 위해 혁신형 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혁신형 중소기업을 2006년 1만 4천개에서 2008년에는 3만개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소상공인을 제외한 중소기업 32만여 개의 1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정부에 따르면 혁신형 중소기업은 벤처기업(창업투자회사 등 벤처금융기관이 사업아이템의 미래 성장성과 시장성을 인정해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보증·융자한 기업), 기술혁신형 기업(기술혁신활동을 통해 기술경쟁력 확보가 가능하거나 미래 성장가능성 있는 기업), 경영혁신형 기업(인적자원 관리, 공정혁신, 지식·정보관리, 마케팅 등 다양한 경영혁신활동을 수행해 성과를 얻은 기업) 등을 의미한다.
이런 설명만으로는 어느 것이 벤처인지, 기술혁신형(inno-biz)기업 또는 경영혁신형 기업인지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기술혁신형 기업과 벤처기업을 따로 분류하기는 사실 어려운 일이다.
IMF위기를 맞았을 때 한국경제를 살릴 희망으로 떠오른 게 벤처기업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벤처정책에 힘을 쏟았고 지원정책에 힘입어 벤처붐이 일기 시작했다. 벤처는 모든 걸 푸는 열쇠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벤처 무늬만 띠어도 사람과 돈이 몰렸다.

단기 졸속을 경계해야

당시 벤처기업을 육성해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정책방향은 옳았다. 문제는 벤처기업을 단기간에 육성하겠다고 성급하게 서두르고 양적 목표를 내세운 데에서 나타났다. 어떤 기업이 벤처인지를 가릴 명확한 기준도 없이 정부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벤처기업으로 인증했다.
벤처로 인증되면 많은 지원이 따랐기 때문에 벤처로 인증받기 위한 로비행위가 성행한 것은 당연했다. 정부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2만 개의 벤처기업 창업을 목표로 세웠다가 벤처붐이 일자 다시 2005년까지 4만개로 늘려 잡았다. 2002년 초 벤처기업 수는 1만 1000개를 넘었다. 전체 중소제조업체의 수가 10만여 개에 불과한 상황에서 4만개는 엄청난 목표였다.
정부지원에 힘입어 벤처인증기업 수는 크게 늘어났어도 제대로 된 벤처기업은 30%에 불과했고 그 중에서도 국제기준의 하이테크형 기업은 많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벤처비리가 터지면서 단기간에 형성됐던 벤처붐은 꺼지기 시작했고 벤처육성정책은 힘을 잃게 됐다. 구호만 요란했던 2만개, 4만개 육성목표는 자취를 감추었다. 벤처기업은 말 그대로 모험기업이다. 그런 벤처기업을 정부가 인증하려는 게 무모한 일이었다. 기업만 잘하면 됐지, 벤처라는 딱지가 붙으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정책 목표는 분명하고 쉽게

정책목표는 분명하게 설정되고 정책수요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숫자를 내세운다고 목표가 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에 힘을 쏟는 건 바람직한 정책이다.
그러나 3만 개 육성이라는 목표를 부각시키지 않는 게 옳다. 그런 숫자목표를 앞세우면 정책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목표달성에 매달릴 가능성이 커지고 거기에 무리가 따르기 쉽다. 평가기준의 적용여하에 따라 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선정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정책을 결코 폄하하고자해서가 아니다. 벤처기업 4만개 목표를 세워 정책을 추진하다가 흐지부지된 과거경험 때문에 이런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을 추진할 때 그 당시의 상황만 고려하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도 따져 보아야한다. 중소기업정책당국은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 때문에 늘 어떤 압박감 같은 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 가시적 성과를 나타내려고 서둘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부 스스로 밝혔듯이 혁신 친화적 기업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쓰레기더미로 악취가 심했던 난지도가 깨끗한 생태공원으로 바뀌었다. 꽃이 피고 나비와 새가 날아오는 것은 그런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을 조성하면 혁신형이든 또 어떤 이름의 기업이든 경쟁력 있는 기업이 몰려와 활기를 띨 수 있을 게 아닌가.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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