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 비무장지대는 1953년 맺어진 정전협정에 따라 남북한간에 동서로 약250km의 군사분계선을 만들었다.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2km 떨어진 선이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이며,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2km떨어진 선이 비무장지대의 북방 한계선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그 단어가 훨씬 익숙하겠지만, 일반인들은 평상시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만큼 무감각이 돼 버렸다.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익숙해진 일상 탓일 텐데, 지금은 그곳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많은 국내외인들이 찾아든다.

#제3땅굴

통일대교를 지나 검문소 앞에 이르면 셔틀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하고 차량을 통과시켜 준다. 알룩달룩한 제복을 걸친 군인들, 현병들, 그들의 허리 벨트에는 JSA라는 마크가 확연하다. 군용차량도 전부 그 마크다. 영화 JSA가 문득 떠오른다. 눈 안에 들어오는 풍광은 스산하다.
제3땅굴(파주시 군내면 점원리) 앞에는 조형물이 있고 꽁꽁 얼어붙은 수도관에는 노루 한 쌍의 조형물도 눈에 띈다. 영
상관에서 안보동영상을 보고 땅굴을 연결하는 모노레일을 타고 땅속으로 내려간다. 1978년 아군에게 발견된 제3땅굴.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외국인들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마치 외국에나 여행을 온 듯하다. 외국사람들에게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것이 큰 흥밋거리일터, 남북한의 치열한 현장이 궁금사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갔을 때 그 나라의 큰 특색거리를 찾아 나서듯이 말이다.
좁은 땅굴은 습하고 차가운 화강암 벽 위에는 방울방울 맺힌 이슬이 물길이 돼 흘러내리고 있다.
좁고 긴 땅굴은 긴 시간 머물기 어려울 정도로 답답해진다.
두텁게 차려입은 겨울옷만이 원인은 아닐 듯하다. 숨 막힐 듯한 땅굴을 뒤로하고 도라산 전망대에 오른다.

#도라산 전망대

1987년1월부터 공개된 도라산 전망대(파주시 군내면 점원리). 송악산 OP폐쇄에 따라 대체 신설됐으며 북한의 생활을 바라볼 수 있는 남측의 최북단 전망대다.
영상관 유리창 너머로 지독하게 가깝게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개성이 다가선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은 금방이라도 북한 땅을 밟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진다.
망원렌즈 안으로 보이는 북측의 ‘금안골’이라는 농촌마을에는 북측 주민의 움직임과 초등학교에서 어린소년들이 군사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 관측되기도 한다.
하지만 헌병들의 사진촬영에 대한 통제는 심해진다. 망원경 설치된 야외공간에 노란 선을 밟고서야 사진촬영이 가능하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할일을 잃어버린 탓에 따뜻한 차안으로 기어들어오는 시간이 빨라진다. 차는 도라산 역으로 움직인다.

#도라산역

경의선 도라산역은 2002년 4월 11일에 완공돼 일반인들에게 관광코스로 개방됐다.
경의선 최북단 역으로 아직 미개통이지만 다음 역은 개성이라는 글자가 뚜렷하다.
이곳은 서울역에서 경의선 열차를 이용해 임진강역까지 와서 하루 3번(10시 23분, 11시 32분(도라산역만 운행) 오후 1시23)운행하는 기차로 갈아타면 된다.
300명으로 인원이 제한돼 있지만 못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조금 일찍 서둘러야 하는 것은 기본. 그리고 월요일, 법정 공휴일에는 운행하지 않는다는 점도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철도역사는 매우 번듯하다. 기차가 오지 않은 역사의 철로에 헌병 한명이 지키고 서 있다.
북한 쪽을 향해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는 말. 그의 당연한 역할 수행의 말 한마디보다는 ‘얼마나 추울까’ 하는 안타까움이 더 앞선다. 개통당시 전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의 사인이 유리벽에 잘 보관돼 있다.
언제나 개성으로 이 철로가 연결될까? 기차역에도 도로에도 개성이라는 글자가 손쉽게 눈에 띄는데, 참으로 가까운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대성동 마을

차는 일정 시간에 맞춰 부산하게 움직인다. 사람들도 추위 탓에 서둘러 버스를 사수하는 탓에 시간이 지연되지도 않는다. 지금 민통선에는 통일촌, 해마루촌, 대성동 마을이 있는데, 통일촌이나 해마루촌은 대성동 마을만큼 통제가 심하지 않다. 특히 통일촌은 장단콩 두부로 이름을 나 있는 곳. 해튼 대성동 마을을 들어가는 초입부터 검색이 심하다. 일일이 주민증을 확인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 마을도 일반인들에게 개방할 예정에 있다. 스르르 미끄러지듯 차가 철통같은 부대 안으로 들어선다. 그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모습은 여느 시골과 다르지 않다. 썰렁한 겨울 풍경. 일부러 꾸며놓은 건물이 없으니 눈 속에 들어오는 풍광은 지루하기조차 하다.
운전기사는 능숙하게 대성동 마을에 대해 설명한다. 50-60가구가 살고 있는데, 장손만 이곳에 거주하고, 장손이 결혼할 때만 외지에서 여자를 들일 수 있으며, 집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말이다. 아이들은 외지로 교육을 보낼 수 있으며, 가족일지라도 방문하려면 1주일 전에 출입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
초등학교가 있는데, 컴퓨터 등을 들여다 놓았다는 것. 거주비 이외에도 주로 농산물이나 특용작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수익이 꽤 높다는 것 등등. 시멘트 건물로 된 마을 회관에 밥상이 차려져 있다.
자연산 메기와 참게탕을 넣어 끓인 매운탕과 밑반찬이 전부 이곳에서 생산해내는 것이어서인지 맛이 좋다. 600m 앞에 북한을 볼 수 있다는 전망대 코스는 사정상 밟지 못했다.
대신 옥상에 올라 멀리 송악산과 마을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열심히 찍었던 사진은 검색을 당했다. 건물 등은 일절 찍을 수 없다는 것이 이곳 상황이다.

#두지 나루터 황포돛배 타기

적성면 두지리의 황포돛배가 개항되면서 한번 찾아온 적이 있다.
특별히 볼거리가 없는 곳이라서 몇 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한 듯하다. 배는 추위를 가르기 위해서 사면을 유리창과 비닐로 씌웠다. 옛 수로를 따라 재현된 황포돛배.
선장은 능숙하게 이리저리 입 아프게 설명을 하지만 눈 안에 펼쳐지는 풍광은 식상하다. 뱃길에 강물이 출렁이다. 검푸른 빛, 무수한 핏물이 이 강으로 흘러들었을 전쟁의 상흔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흐르고 있을 뿐이다.

#경순왕릉

오랫동안 군부대 통제를 받던 경순왕릉(사적 제244호,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11월 말부터 완전 개방됐는데, 필자도 처음 찾는 능이다. 신라 왕릉 중 경주 지역을 벗어나 있는 유일한 능.
능 자체가 볼거리가 없는 관광 상품이지만 그동안 민간인들이 출입할 수 없어서 그저 그리움의 장소였던 것이다. 썰렁한 능 한기지만 왕릉 밑에 있는 전각에는 반질한 돌이 한기 모셔져 있는 고려 때 세워진 경순왕 추도비가 눈길을 끈다. 한때는 동네에서 빨래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돌조각에 새겨진 글씨조차 사라진, 반질반질한 중국산 석재는 겉으로 보기에는 빨래판하기에 적격했을 것 같아 미소가 번진다. 임진강변에 무수히 찾아든 철새 떼도 이 겨울에 볼거리다.
■관람신청: 출입신청(개인 및 단체):DMZ관광사업소(031-954-0303)
■관광문의: 임진각관광안내소(031-953-4744), 도라산 역:1544-7788, 031-954-0303, 두지나루터 황포 돛배:031-958-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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