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소기업 정책은 일종의 전략적 교착상태(strategic stalemate)에 빠져있어서 수많은 정책안이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지만 현실적 상황이 크게 개선되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원화 강세, 인적자원 부족, 중국의 추격 등 거시적 환경변수에 대한 대응이나 구조화된 대중소기업 관계 등을 개선하기에는 정책수단의 효과가 한계에 달했다. 여기에 중소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태도로 인해 경영상의 어려움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사업의욕을 저하시키고 있다.
중소기업청 차원에서는 지원부서로서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타 부처의 입장에서 기업은 규제의 대상일 뿐이다. 기업의 규제완화에 대한 목소리는 높지만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일선 공무원들의 기업에 대한 경직된 태도 때문인 경우가 많다. 관료적이고 융통성 없는 태도로 말미암아 기업 의사결정의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추가적인 비용 부담을 발생하게 한다.
불합리한 줄 알면서도 융통성이나 재량권을 발휘하기 어려운 이유를 담당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감사에 지적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업에게 유리한 법적용을 하게 되면 감사에 지적을 당해서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감사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일선 부서는 적어도 서너 곳의 감사를 받다 보니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법적인 하자가 없어도 민원의 소지가 있는 경우 공무원의 재량권은 위축돼 소극적인 태도, 일종의 복지부동의 태도가 만연하게 된다.

사회전체에 불신 팽배

감사기관에게 왜 그렇게 경직된 감사를 하는가 하고 물어보면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부정부패는 분명 척결돼야 할 사회악이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을 잘 못됐다고 할 수 없지만 감사에 안 걸리기 위한 소극적인 업무처리로 인해 발생하는 효율성 저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국가 전체 차원에서 보면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경쟁력 약화라는 기회비용을 발생시키게 된다.
이러한 공무원들의 태도나 사회적 관행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의 결여 때문이다. ‘트러스트’의 저자 후쿠야마는 신뢰를 ‘공동체의 구성원이 보편적인 규범에 기초해 규칙적이고 정직하며 협동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라고 정의한다. 그는 한국을 대표적인 저신뢰 사회라고 지적하면서 신뢰자본이 없이 선진국이 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을 한 바 있다. 현재 한국이라는 배가 거대한 암초에 걸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불신을 전제로 한 감사와 평가의 경직성이 사회 조직이나 개인 간 거래비용의 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소기업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규제뿐 만 아니라 지원 측면에서도 국가 전체 차원에서 정책기관의 적극적인 태도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기업경쟁력은 국가 안보다

혁신형 중소기업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기술인력 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려면 산업기능요원과 연구개발인력에 대한 병역특례 제도의 활용이 강화돼야 하지만 현재는 병역자원 감소 때문에 오히려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 경쟁력을 국가 안보차원에서 보면 좀더 과감한 정책발상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해외기술인력의 적극적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공계 해외 유학생을 유치해 중소기업에 공급이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 공대에 베트남, 말레이시아, 중국 유학생 유치를 위한 노력이 강화되고 있는데 이들이 중소기업에 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일자리 창출의 한계, 세수 증가의 어려움, 복지재정 부담의 증가 등 악순환적 구조를 고착시켜서 우리가 소망하는 선진사회로의 발전을 어렵게 한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적 기업가 활동이 위축되면, 사회전체의 파이를 키우기보다 있는 파이 나누기의 제로섬 게임(zero-sum)이 돼 이해관계자 집단의 갈등만 커지고 사회전체의 활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감사나 부정방지를 통한 사회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동성을 저해할 정도로 경직된 사회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기업의 창업과 성장으로 연결시켜 투자와 회수의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것은 이제 국가 안보차원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실질적 효과가 있는 중소기업 정책이 만들어 지려면 좀더 높은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마다 수많은 중소기업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할 것이 예상된다. 다양한 정책메뉴에 현혹되기보다 후보들이 중소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제대로 돼 있는가, 중소기업 정책의 차원을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정책이 실현 가능한가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한정화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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