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겨울이면 철원여행을 생각하게 된다. 그곳 한탄강의 래프팅이나 직탕폭포 등의 여름테마가 있음에도 왜 굳이 겨울에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일까? 애써 그 이유를 따진다면 바로 민통선을 잊지 않고 찾아드는 철새 떼가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추운 강원도 최북단의 철원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어둑해지고 있다.

철새 떼를 만나려면 고석정 ‘철의 삼각 전적관(033-455-3129)’에서 신청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룻밤은 근처에서 지새워야 한다. 철원의 삼부연 폭포 쪽에 잠시 눈도장을 찍고 철원읍내 골목에 있는 철원숯불갈비(033-452-3882)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이미 택시 운전사에게 맛 검증을 해 놓은 것은 투철한(?) 직업의식. 반찬 등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평범 수준인데, 밥을 먹기 위해 시킨 된장찌개는 가히 일품이다. 가을에 매운 고추를 듬뿍 된장에 박아 두면 고추물이 배어 아주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여낼 수 있다는 말이다. 오래 보관은 할 수 없지만, 그 맛에는 점수를 줄만하다. 읍내에 있는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고석정으로 향한다. 민통선 안이라 관광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떠나야 한다. 안보관광과 철새관광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철새관광은 지정된 장소가 아니고서는 멈춰 설 수 없단다. 어차피 안보관광을 하더라도 철새 떼 구경을 못하는 일이 아니다. 자기 차를 갖고 갈 수 있으니 여차 눈치 봐서 잠시 차를 멈추면 될 일이다.

금슬 좋은 두루미 부부

입장료와 주차비 내고 출입신청서 쓰고 신분증 맡기면 정해진 시간(하루에 4번 출입가능)에 인솔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군부대를 통과하고 제2땅굴로 가는 길목에서 한갓지게 먹이를 찾아 헤매는 두루미와 학 떼를 만난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매우 커서 차창으로도 선명하게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 두 마리가 사이좋게 먹이를 찾는데, 실제로 가족 중심적으로 움직인단다. 금슬이 좋은 것은 잉꼬뿐이 아닌 듯하다. 긴 다리와 긴 목을 구부리며 먹이를 쪼아대는 모습이 정겹다. 인솔자는 크게 선심이라도 쓰는 듯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아주 잠깐 차를 세워준다.
철모를 쓴 군인을 따라 제2땅굴을 걸어서 들어갔다 나왔고, 자그마한 전시관에서 당시 발굴했던 북한물품을 구경하고 1층으로 내려와 삼지구엽초와 흑미를 구입했다. 인솔자말에 따르면 이곳은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이고 삼지구엽초도 직접 뜯는 사람에게서 구입한다는 말이다. 관광객들에게 말을 해줄 수 없어 안타깝다는 그 말이 솔깃해서 구입한 것은 아니지만 구입해온 흑미 몇 알 넣고 지은 밥은 매우 고소하고 맛이 좋았다.

철의 삼각지에 피어난 효심

차는 다시 움직여 철의 삼각지 전망대에 다다른다. 자그마한 역사인 월정리 역전에 들어가서 철길 근처에 녹슨 열차의 잔해를 바라본 본다. 세월이 흐를수록 열차는 녹이 슬고 삭아지고 있다. 역전 옆에는 예전에 못 보던 처녀 동상이 눈에 띈다. 한손에 보름달을 들고 있는 동상은 ‘달우물처녀상’이라고 써놓았는데, 옛날 이곳 마을에서 홀아버지와 가난하게 살던 착한 처녀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려고 밤낮으로 신령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신령님이 나타나 치유 비법을 알려주었다. 보름달이 비쳐있는 샘에서 손 모금으로 천 번 물을 떠서 아버지에게 먹이면 쾌유한다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효녀는 신령님이 시켜준 대로 달이 지기 전에 천 번의 물을 손 모금으로 길어다 아버지에 먹였다. 효녀의 지성으로 아버지의 병은 나았지만 지친 효녀는 천 번째의 물을 아버지에게 먹이고는 죽고 말았는데 후세 사람들이 효녀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을 ‘월정’(月井)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처녀동상을 비껴서 전망대에 오르고 그저 망원경 너머로 비치는 아스라한 북한 전경을 감상하면서 이내 이곳을 떠난다. 옛 철원읍내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들을 그저 차안에서 스쳐 보내고 차가 멈춘 곳은 노동당사. 노동당사는 해방이후 북한이 한국전쟁 전까지 사용한 철원군 당사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지역을 관장하면서 애국인사들을 체포, 구금, 고문, 학살했던 악명 높은 곳이다. 그렇게 안보관광은 끝이 나고 이내 신분증을 돌려주고 나면 자유시간이다.

도피안사와 고석정 얼음 꽃

이곳까지 들러 도피안사(동송읍 관우리)를 빼놓을 수 없다. 9세기 하대신라에 창건된 고찰. 대웅전 안에는 국보 제63호로 지정된 철조 비로자나불상이 있고 절 마당에는 보물 제223호로 지정된 신라시대 대표적인 이형탑으로 손꼽히는 삼층석탑이 있는 곳. 하지만 예전의 모습은 나날이 사라진다. 돌계단 따라 오르면 수령 오래된 느티나무 몇 그루는 그대로인데, 생각 없이 지어진 건물 등으로 첫 번째, 두 번째 보았던 모습은 이제 추억이라는 뇌리 속에만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나오는 길에 미처 시간 없어 보지 못한 고석정으로 발길을 옮긴다. 고석정 협곡은 얼음이 얼었고, 가파른 벼랑길에는 얼음 꽃이 피었다. 겨울햇살이 비추니 마음까지 싱그럽다.
돌아 나오는 길목에서 잠시 승일교를 건넜다. 북한과 한국이 어쩔 수 없이 반반씩 만들었다는 승일교는 이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차량통행은 못한다. 철원을 벗어나기 전에 전선휴게소(033-458-6068, 유곡리)라는 곳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개인적으로 민물 매운탕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군청은 물론이고 이미 두 사람이나 이 집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기에 호기심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곡리는 생각보다 먼 거리였는데, 군부대 앞에서는 신분증을 확인해주어야 하고 맡겨야 하는 점도 매우 독특하다. 군부대를 통과하고 나서도 한참을 팻말 따라 들어갔는데, 민가도 없는 그런 곳에 자그마한 벽돌집 한 채를 만나게 된다. 북한에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놓았다는 교회건물 한 채가 식당 옆으로 을씨년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식당 안에는 몇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에 한탄강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곳은 자연산 메기 매운탕과 토종닭을 파는 집인데, 한탄강에서 잡아, 겨울철에는 강변에 돌무더기를 만들어 두고 재료로 이용한다고 한다. 매운탕이 끓여지는 동안 주변을 살펴보니, 철교가 있다. ‘끊어진 철교, 금강산 90리’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짐작컨대 월정리역보다 더 북쪽으로 나 있는 끊어진 철교인 듯하다. 어떻게 이런 군부대 안에 식당이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그 의구심은 밖에서 서성거리는 젊은 두 사람을 통해서 풀리게 된다. 원래 이곳 주변의 농토는 식당 주인의 땅이었고, 그 땅을 군부대에 파는 조건으로 매운탕 집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군부대에서 나가라고 하면 철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산 메기매운탕이 맛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개인적인 취향이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듯. 대신 매우 독특한 곳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북한 땅이 왠지 친근하게 다가온다.

■자가 운전= 43번국도 이용-운천-신철원 사거리를 지나 문혜리에서 좌회전해 463번 지방도를 타고 승일교를 건너면 고석정 관광단지(철원온천). 전선휴게소는 위치가 다소 복잡하므로 전화로 확인하고 미리 예약하면 좋다.
■기타 음식점과 숙박= 신철원에는 30년 이상의 연륜을 가진 신철원막국수집(033-452-2589)이 소문났다. 그 외 이동은 갈비의 원조촌. 그 외 고석정 근처에 있는 궁예도성(033-455-1944), 얼음국물에 말아먹는 내대막국수(033-452-3932)집이 있다. 그 외 다소 멀지만 이동 백운계곡 쪽에 있는 이동자연갈비(031-535-9636)가 괜찮고 영중면에 있는 원조 손두부집이 맛이 좋다. 숙박은 고석정 근처나 양지리 마을의 펜션을 이용하거나 읍내의 24시 찜질방을 이용하면 된다. 철원온천은 리모델링 중으로 아직 미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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