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가 타결됨에 따라 10여년부터 예고해 온 글로벌 무한경쟁이 안방까지 들어 온 상황이 됐다. 무역장벽이 사라지게 되면 기업 특유의 경쟁우위가 생존의 요건으로서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제 중소기업은 한국과 미국을 통합한 시장에서의 전략적 위치설정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사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 노출돼 오면서 상당한 체질 강화가 이뤄져 왔기 때문에 자유무역 협정이 기회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자유무역협정이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려면 이를 계기로 사회 시스템의 혁신이 수반돼야 한다.
개방된 자유시장체제에서는 개별기업의 경쟁력 차이가 시장에서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은 사회 시스템 내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시스템간 경쟁이 개별기업의 경쟁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기업시스템은 자원의 조달, 생산, 유통, 판매로 구성돼 있으며 기업내부 뿐만 아니라 공급사슬이나 유통망 등과의 연결이 경쟁에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개별기업의 경쟁력은 외부 시스템과의 연결 경쟁력이며 이 시스템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사회의 기반하부구조 즉 인프라이다. 미국과 한국의 사회 인프라 격차가 현저하기 때문에 인프라의 업그레이드가 시급한 과제이다.
어느 신문에선가 한미 FTA를 일본의 메이지 유신기의 개방에 비유하면서 이제는 한국이 일본보다 한 발 앞섰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일본이 개방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사회 시스템의 혁신을 이뤘기 때문이다. 개방만 하고 시스템의 혁신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개방이 오히려 사회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프라 업 그레이드 ‘시급’

그 당시 일본의 지도층이 선각자의 자세로 일본 사회의 낙후성을 탈피하고자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강력한 근대국가로 변모하면서 부국강병을 이루었고 그 결과로 한반도를 포함 아시아의 운명을 결정하고 말았었다.
우리가 일본보다 FTA에 한 발 앞섰다고 자부하기보다 개방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 제도적 혁신의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과 비교해서 상대적인 혁신이 시급한 분야는 교육, 금융, 법률 인프라이며 이 분야의 혁신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미국 기업의 경쟁력은 바로 이 세 분야의 인프라가 강력하게 뒷받침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하기 좋은 사회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최소화하고 필요한 지원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기업활동을 방해하거나 복지부동형 공무원들의 행태가 사라져야 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도 미국에 비해 우리 사회가 낙후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업외 신경쓸 일 없게 만들어야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미국에 이민 와서 사업을 하거나, 반대로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사업을 하는 분들을 가끔 만날 기회가 있다. 양 국가간 사업 환경의 차이를 물어보면 공통적인 답이 “미국에서는 사업에만 전념하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사업 외에 신경 쓸 일이 너무 많다”라는 것이다. 원자 현미경으로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사업을 시작해서 올해 10년이 된 팍시스템의 박상일 사장은 미국과 한국의 사업 환경 중 가장 현저한 차이가 우수 인력을 확보하는데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명문 대학의 석박사도 비전이 있고 뜻이 맞으면 기꺼이 신생 중소기업에 동참하는데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본인이 오고 싶어도 주변에서 필사적으로 말려서 올 수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박사장은 어렵게 우수인력을 확보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성공한 편이지만 수많은 중소기업이 이러한 현실에 절망하고 낙담하는 상황이다.
이제 한국 사회도 투명해져서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부패지수는 비교 대상국 중 최하위 수준에 속한다. 중소기업이 무한경쟁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 본연의 경쟁력 강화에 온 힘을 쏟을 수 있도록 해주고 규제관련 부서에서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도 기술과 마케팅 혁신을 통해서 경쟁력을 높임과 동시에 회계 투명성과 윤리 수준을 높여서 사회의 신뢰를 받을 있도록 하는 자기혁신이 수반될 때 FTA는 진정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정화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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