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에 눈발이 날리고 도로변은 온통 빙판이다. 사람들은 익숙하게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도 하고 자동차도 슬슬 잘 달린다. 기차에서 고양이세수를 하고나서 강원도식당(0433-5751166)이라는 곳에 도착. 양양이 고향이라는 여주인(최옥자)의 솜씨가 괜찮다. 가마솥 밥에 더덕과 고사리, 된장찌개 등등. 이곳에 온지 40년이 넘었다는 그녀. 구수한 숭늉 한잔으로 입을 축이고 드디어 백두산을 향한다.

백두폭포와 장백폭포

이곳부터는 지프로 이동한다.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미인송이라는 소나무 군락지의 설화가 멋지다. 수령 오래된 나무 보기가 힘든 중국 땅이었는데, 이 지역은 그런대로 나무가 굵고 빽빽해서 오대산 설경을 연상케 한다. 입구에서는 등산에 필요한 장비 일절을 팔거나 대여해주고 있다.
지프는 장백산 매표소 앞까지였고,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셔틀로 바꿔 탄다. 배에서 자고, 기차에서 자고, 생각하면 강행군인데도 몸은 초긴장 상태인지 의식은 또렷하다. 중국호텔과 대우호텔도 거쳐 오면서 보았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장백산이라는 이름만 남아 있는 고구려 땅. 최고봉인 장군봉의 해발고도가 2,750m다.
눈에 덮인 산정을 멀리서 보면 머리 위에 흰눈을 이고 있는 노인의 백발과 같다고 백두산이라 불렸으며, 오랜 기간 흰 눈에 덮여 있으므로 장백산, 백산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차가 멈추는 곳(대략 1800고지 정도)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이다.
운 좋게도 아침에 날리던 눈발이 그치고 해가 솟는다. 얼마나 운이 좋은 일인가? 어쨌든 이 코스를 ‘북파’라고 한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과 설산이 눈앞으로 다가서고, 멀리 장백폭포와 반대편에 백두폭포의 두터운 얼음층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백두산’ 천지 가는 길

카메라 장비를 목에 걸고 춥다는 말에 바지를 두개나 껴입고, 목도리, 장갑, 스패츠, 아이젠 등 겨울 산행 준비를 단단히 하고 산길을 오른다.
산하는 온통 설국(4월 1일 기준)이다. 공안들이 눈을 치우지 않았다면 무릎 이상까지 눈이 찼을 정도다. 오르다보니 TV에서 흔히 보던 계란이 뜨거운 물에 담겨져 있다. 화강암이 융화하면서 생성되는 온천수다. 온천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지고 이어 터널을 만난다.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리고 다리는 천근처럼 무겁다. 터널은 밖을 가늠할 수 없는데, 얼마나 길고 지루한지, 게다가 해발이 높아서인지 현기증이 난다.
그렇게 터널이 끝나면 이내 ‘달문’으로 잇는 눈길을 만나는데, 산길 옆으로 천지물이 흘러가고 있다. 경사도가 크진 않지만 눈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다. 거의 감각으로 다가서야 할 지경. 15분 정도 가면 천지가 나오지만 꽁꽁 얼어서 육안으로는 큰 구분이 없다. 호수의 물은 10월 중순부터 다음해 6월 중순까지 결빙된다고 한다. 천지는 지각변동이 활발했던 제3기말의 화산활동으로 인해 분화구가 됐으며 이들 호수와 지하수가 흘러 압록강과 두만강의 원류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천지에 서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고 웃통을 벗고 백두산 정기를 받는 이도 눈에 띈다. 그러는 사이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곳에서도 뒤쳐지면 일행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다. 서둘러 하산하면서 계란을 먹어보지만 설익어 맛은 없다.
운 좋게 백두산 여행이 잘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건은 그 이후부터다. 산에서 시간이 많이 지체돼 온천욕은 할 수 없게 됐고 대신 전날 미리 돈을 냈던 설장차(1인당 3만원)를 타고 천문봉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일정을 접기로 했다.
바퀴가 마치 탱크처럼 돼 있어 힘이 좋아 보이는데, 문제는 작은 공간에 30여명이 넘는 인원을 콩나물시루처럼 쑤셔 박는다는 것이다. 거리도 길어서 40여분은 족히 올라가야 한다. 산행에 지친 몸과 짊어진 배낭, 사람들로 꿈쩍할 수도 없는 상황. 밀리고 찌그러지고, 밖은 볼 수도 없는 역경을 견디면서 올라가서는 겨우 ‘천지’라는 팻말 앞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는 일 뿐이었다.
일행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커지고, 겨우 내려와 라면과 준비한 찬 도시락으로 때우고 고구려 문화유적지가 흩어져 있는 집안(集安, 지안현)까지 가야 하는 상황. 사실 중국은 워낙 넓어서 이동하는 4-5시간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백두산에서 길을 잃다
하지만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일이 인생. 지친대로 지친 몸을 지프차 3대에 나누어 타고 먼 길을 떠난다. 맨 앞 차량에 가이드가 타고 길을 안내하는데, 지름길이라는 비포장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문제는 서로의 사인이 맞지 않아 차량 세대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핸드폰(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중국 통신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이 있지만 그것조차 연락이 안 되는 상황. 설상가상 필자가 탄 차량의 운전자는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는 일. 차안은 금세 또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눈은 계속 내리고, 포장길은 나오지 않고, 빙판운전에 아무리 익숙한 사람일지라도 사고는 예측할 수 없는 일. 이 낯선 곳에서 전복이라도 된다면 하는 생각에 젊은이가 운전을 할 때마다 내 발에도 힘이 들어간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일행을 다 만났지만 목적지인 ‘집안’까지 4~5시간을 더 달려간다는 것은 무리가 있고, 여기서부터 일정을 바꾸기 시작한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자그마한 소읍의 백순비우(0439-6522278)라는 식당을 찾아 양고기 샤브샤브를 먹는다. 한족이 하는 정통 중식 집이었는데, 의외로 상차림은 괜찮았고 입맛을 거슬리는 소스도 없었다. 안내자가 미리 얘기를 했는지도 모를 일. 어쨌든 중국에서는 양고기를 최상의 고기로 치는데, 얼마나 인기가 높으면 ‘양두구육’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왔겠는가. 양고기 대신 개고기를 파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다.
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串’ 형태의 꼬치구이집 불빛도 꺼져가는 중국 소읍에서의 추억은 오랫동안 기억될 듯하다.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가 아닌가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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