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가 했는데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문제가 불거지자 중소기업에는 다시 찬바람이 분다. 국회에서 고용허가제 입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비롯한 경제5단체가 강력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외국인 근로자는 2002년 말 현재 36만여명, 이중 불법체류자는 28만 9천여명(전체의 80%)에 이른다. 이런 상황은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침해사례도 계속 제기돼왔다. 그냥 두고볼 일은 아니다.
그래서 모든 탓을 현행 산업연수생제에 돌리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옳은 일인가. 산업연수생 도입 대상국은 중국,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14개국이다. 그런데 2002년 3월 불법체류 자진신고자 출신국가는 96개국이었다.
이것은 불법취업자 발생이 현행 산업연수생제 때문이라는 주장의 허구를 말해준다. 불법체류자의 74%가 산업연수생제와 관계없이 관광이나 친지방문 등의 명목으로 입국한 경우라는 데에서도 이는 다시 확인된다.
우리와 인력송출국가의 임금격차는 10∼20배에 이른다. 외국근로자가 한국행을 노리는 건 당연하다. 일부 연수생이 직장을 이탈할 요인도 있다. 인력난을 겪고 있는 고용주들은 불법체류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정부의 단속미흡 등 불법체류가 쉬운 환경도 한몫 한다. 이런 요인이 어우러져 불법 체류자가 늘어난 것이다. 인권침해는 주로 불법체류자에게서 발생한다.

中企 목소리 경청을
그런데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관광 등 목적으로 입국해서 불법 취업하는 걸 막을 수 있는가. 또한 중소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마음껏 고용할 수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더욱이 노동3권 보장으로 외국노동자의 기대심리를 높여 이들의 불법유입을 조장할 가능성만 키운다.
중소기업의 부담증가는 어쩔 것인가. 중소기업계는 인건비가 40% 정도 상승할 것으로 추산한다. 필요한 인력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 인건비만 올라가면 그렇지 않아도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중소기업은 앞길이 막막하다. 살아남기 위해서 해외로 공장이전을 서두르거나 문을 닫는 기업도 늘어날 것이다.

矯角殺牛 피해야
외국인 근로자 인권침해문제는 일부 고용주 개인의 도덕문제, 양심의 문제라고 하지만 그렇게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외국인 내국인을 불문하고, 또한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인권은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여기에 어떤 이견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만이 대안은 아니다.
일본은 우리의 산업연수생제와 거의 같은 기능실습제를 운용하고 있지만 인권침해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독일은 고용허가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어떤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검증도 안 된 다른 제도로 바꾸자는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교과서도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새로 나오는 참고서만 계속 사는 학생은 성적을 올릴 수 없는 법이다.
당국은 중소기업이 고용허가제 도입에 그토록 반대하는 이유를 경청해야한다. 중소기업에 좋은 것이면 경제에도 나라에도 좋다는 생각은 왜 못 하는가.
고용허가제 아니면 불법체류도 단속 못하고 인권도 보장할 수 없다면,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동안 당국은 불법체류자 단속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불법체류를 막겠다고 새로운 제도도입을 말하고 있다.
불법체류를 막고 인권침해도 막고 중소기업의 부담도 늘리지 않으면서 인력난을 완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법과 합법을 구분해 불법은 엄격히 다스리는 일이다. 그 일부터 시행해야 옳다.
문제를 바로 풀어 가는 걸 누가 마다하랴. 하지만 쇠뿔을 고치려다 소를 잡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고용허가제만이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아니다.

류동길(숭실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yood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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