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친기업정책을 들고 나온 MB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세계적인 유가급등, 원자재난으로 더 이상 생산하기도 어려운 중소기업들에게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와 급등하는 환율로 인한 KIKO 등 환헤지 파생상품의 타격은 한국의 풀뿌리 자본주의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9988234’라는 말과 같이 한국기업숫자의 99%에 고용분담률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이 2~3년 사이에 다 파산할 것이라는 암울하고도 자조 섞인 소리가 자못 심각한 우려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실효성 없어

한국의 300만 중소기업 중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청에 참여하는 업체는 무려 60%에 이르고 제조업체의 원가에서 에너지와 원자재가격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60%를 넘어선다는 통계숫자를 볼 때 현재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장기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원자재가격의 급등 환경 속에서 실질은 없고 형식적인 규정만 남은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는 한계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한국의 중소기업계에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 할 것이다.
최근 3년간 하청기업들의 납품단가 변동추이를 보면 2005년 1월을 100으로 기준할 때, 2007년 1월에는 109.2로 완만한 상승을 기록했지만, 원자재 구매가격은 같은 기간 132.5로 크게 상승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원자재가와 납품가의 괴리는 2008년 들어 더욱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 실로 중소기업의 생산자체를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는 데, 대기업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생기반하의 조정협의제는 거의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된다.
설상가상으로 은행들의 대출억제는 외환위기에서 비롯된 달러수요의 급증에 전세계적인 신용위기가 겹쳐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자금의 유동성이 심각하게 진행될 것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신뢰기반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올 8월까지 은행의 중기대출 잔액은 총 413조 8천억원으로 11.8% 증가하였으나 그 증가세는 작년 동기 22.6%에 비해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제 2, 제 3금융권과 사채시장마저 얼어붙고 있는데다 증권시장의 폭락에 이어 M&A의 성사율도 2007년 대비 50%이하로 떨어져 직·간접 자금조달이 모두 막혀버린 상황이다. 여기에 이미 KIKO에 계약한 500여 업체의 70% 이상이 감내하기 어렵다는 1천300원의 환율을 넘어서고 있는 현실에서 환헤지의 경험미숙과 은행과 정부의 도덕적 해이에 의한 투기성 상품에의 잘못된 헤지로 인해 흑자도산의 사태가 불을 보는 듯한 상황이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이와 같은 중소기업의 원자재난이나 자금난에 대하여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제 국가전체의 산업정책은 곧 중소기업 정책이 전부가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과 같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동안 시장논리 운운하며 비대칭적인 중소기업의 위상을 모른 체하며 수십년간 형식만 남은 지원에 기대려던 정부의 노력이 정말 혁신적인 시장과 성과지향적으로 전환되길 기대해본다.
이미 유동성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당초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8조3천억원의 긴급 유동성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점에서 실낱같은 희망이 되고 있다. 개별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평가해 회생가능성이 높고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자금지원이 이루어질 전망이며, KIKO로 인해 단기적인 외환 유동성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주거래은행을 통해 유동성 지원을 지속한다는 것도 나름대로 구체적인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증상보다 원인 해결에 중점을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분명 출발부터 잘못됐고, 과정과 절차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은 지적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이 겪는 원자재가 파동이나 KIKO와 같은 환헤지 손실은 분명히 손실이며 단기적인 현상 또한 아니라는 점이다. 더 이상의 손실을 막고 보상가능한 범위내에서 손실에 대한 실제적인 보전조치 없이 그저 유동성으로만 해결하려는 정부의 정책은 또 다른 형식주의에 머물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은 결코 바람직하지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정책의 목표는 증상보다 원인을 해결하고자 하는, 보다 성과에 근거한 효율성이 담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웃돌 빼어 아랫돌 고이는 식의 낡은 형식주의적 정책의 재탕에서 벗어나 보다 타당성 높은 시장과 성과지향의 새로운 혁신적 정책 노력을 기대해 본다.

최용록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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