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조선시대부터 600년간 우리의 수도 역할을 해온 매우 유서 깊은 도시이다. 또한 서울은 조선시대 이전부터도 고대문명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매우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울의 어디를 파내어도 온갖 역사의 흔적들이 나타나는 것이 그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유서 깊은 도시들과 비교해 크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도시의 역사에 비해 크게 부족한 기업의 역사이다.
전 세계의 오래된 도시들은 수 백년에서 심지어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200년이 넘는 기업이 5천개가 넘고,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는 일본의 공고구미로 1천43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회사는 백제인 유중상이 설립한 기업으로 지금도 그의 후손이 이 기업의 기술개발을 주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100년이 넘은 기업은 두산과 동화약품공업 단 두 곳뿐이다.
그동안 유독 장수기업이 많은 일본 기업들의 성공요인에 대한 분석들이 많이 이뤄져 왔다. 그러나 일본보다 더 빠른 문명을 이뤘던 우리가 장수기업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석은 거의 이뤄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경쟁에서 뒤처지는 기업이 조기에 퇴출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에서 장수기업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학문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요인에 대해서는 쉽게 추론해 볼 수 있다. 우선 조선시대에 유교사상에 입각한 사농공상의 신분체제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부터 6.25전쟁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전란도 기업의 수명을 줄이는데 일조 했을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10년 전 IMF 사태와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우리 사회의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업승계 부분에 대해서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거부감을 보여 왔으며 각종 조세정책 또한 이러한 가업승계를 어렵게 해왔다.
일본 경제가 태평양 전쟁에 패한 후 빠르게 성장해 부품소재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가업승계를 통해 그 전통을 이어온 중소형 장수기업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하는 것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장수기업의 요건으로 혁신과 전략, 리더십, 제품교체 등을 이야기하지만 장수기업의 또 다른 요건인 건전한 가업승계에 대해서는 도외시 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기업이 창업돼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이렇게 성장한 기업이 각종 규제에 막혀 지속적으로 생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국가적 손실일 수 밖에 없다. 직원 수가 수십명에서 수백명에 이르는 중소형 기업이 고용을 지속해가며 성장해가는 것은 수십개의 기업이 새로이 창업되는 것과 같은 고용창출 효과를 가진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기업들이 축적해온 각종 기술과 서비스분야의 노하우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IT와 BT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으나 이들 분야의 부품소재분야에서는 장수기업의 전통을 이어온 일본의 부품소재기업들에게 완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도 각종 제도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발맞춰 편법적인 경영승계는 지양해야 할 것이며, 단순한 경영승계가 아닌 기술과 서비스의 계승발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뿌리 깊은 기업들이 우리 경제를 받치고 있을 때 우리 경제는 더욱 건실해 질 것이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김경수
카이로제닉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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