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를 비롯한 영화제 시즌이 돌아온 탓인지, 요즘처럼 좋은 영화가 쏟아진 때도 없었지 싶다. 개봉 예정작 중에서 론 하워드 감독의 ‘프로스트 vs 닉슨’(Frost vs Nixon)과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레슬러’(The Wrestler)는 실재 사건과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한 영화로 특히 70,8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와 닿을 영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프로스트 vs 닉슨’은 데이빗 프로스트(마이클 쉰)와 리처드 닉슨(프랭크 란젤라)의 팽팽한 대결을 그린다.
데이빗 프로스트는 런던과 시드니를 오가던 연예프로그램 전문 MC였다. 이 별 볼일 없는 젊은 플레이보이가 뉴욕 진출을 노리며,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인터뷰를 기획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정치사상 최악의 스캔들이자, 월남전과 함께 미국 현대사에 치명적 오점을 남긴 정신적 상흔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리처드 닉슨은 1974년 8월 9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면서 미 국민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프로스트는 사임 직후부터 닉슨의 인터뷰를 기획했지만, 닉슨을 처음 TV 카메라 앞에 앉힌 것은 1977년 3월 23일이었다. 이때부터 총 4차례에 걸쳐 인터뷰가 이뤄졌는데, 이 인터뷰를 위해 프로스트는 61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은둔 중이던 닉슨이 인터뷰에 응한 것은 물론 정치적 재기를 노렸고, 프로스트 정도의 애송이라면 충분히 요리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기 때문이다.
‘프로스트 vs 닉슨’은 인터뷰 당시를 회고하는 프로스트와 닉슨의 참모진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닉슨의 사임 발표에서부터 인터뷰 성사 과정, 그리고 4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재현한다. 이 과정을 통해 관객은 성공을 꿈꾸는 젊은 MC와 재기를 노리는 노회한 정치가의 팽팽한 심리전, 질문과 답변을 준비하는 참모진의 철저한 조사(닉슨 참모진엔 젊은 다이앤 소여도 보인다.), 언론과 정치 생리의 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올리버 스톤의 1995년 작 ‘닉슨’(Nixon)에서도 그랬듯, 콤플렉스 덩어리로 그려진 닉슨은 동정심마저 자아낸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가의 길을 선택했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의 블루칼라 출신 노인. 존 F. 케네디가 사생활이 난잡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문 좋고 잘 생기고 말 잘한다는 이유로 자신보다 인기가 높았다거나,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인해 재임 중에 이룬 외교적 업적 등이 폄하된 점을 하소연하는 장면은, 나만의 무대와 갈채를 꿈꾸는 평범한 사람을 위무하는 측면이 있다. 물론 닉슨은 끝내 재기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넣으며 도박을 했던 프로스트는 닉슨 인터뷰의 성공으로 BBC의 간판 진행자가 되었고, sir 칭호도 받았다.
원작인 연극에서도 같은 역을 맡았던 마이클 쉰과 프랭크 란젤라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1970년대 재현도 빼어난 시나리오만큼이나 칭찬받아야할 요소라 하겠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워싱턴포스트지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의 노고를 그린 빼어난 정치 스릴러 알란 J. 파큘라 감독의 1976년 작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와 함께 보기를 권한다.

■옥선희┃영화칼럼니스트 blog.naver.com/eastok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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