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겨울도 성큼 다가온 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즈음이다. 남녘에는 진작 봄기운이 스며들었고 봄을 알리는 꽃들도 하나 둘 봉오리를 내밀고 있다.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가냘픈 매화 한 송이. 꽃샘바람 속에 홀로 피어나서 저마다의 마음에 생기를 가득 불어 넣어주는 꽃 중의 꽃! 고목(古木)의 가지 위에 꽃봉오리를 살며시 연 모습이 그렇게 앙증맞을 수 없다.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해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아왔던 매화의 속뜻. 이 어찌 대견하고 귀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맘때쯤이면 생각나는 매화의 여린 꽃눈. 매화를 보면 마음이 그지없이 다사로워진다. 매화는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꽃이어서 더 가슴 사무치게 다가오는가. 그 자태가 사뭇 화려하면서도 고혹적이지만 뭇 사람들을 유혹해 어지럼증을 일으키지 않는다. 제 분수를 안다고 할까. 늙은 등걸에 푸른 이끼가 비늘처럼 돋아 있고, 한 가지에 듬성듬성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 모습은 차라리 경건하기까지 하다.
이른 봄에 흰빛, 연한 붉은빛으로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운다. 사진이나 그림, 장식무늬에 자주 등장하는 매화도 실제 모습을 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쉽게 볼 수 없는 만큼 어쩌다 그 모습을 대하면 한없이 반갑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품격과 절제와 맑음을 겸비한 매화에 견주어 나란 존재는 얼마나 가벼운가.
인고와 명상이 피운 꽃이라 했다. 매화의 이미지는 늘 우리들을 잔잔한 그리움 속으로 안내한다. 온갖 풍상을 다 견뎌낸 생명체답게 어디 한 군데 흐트러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벚나무과에 속하는 매화는 예부터 난초, 국화,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로 대접받아 왔다. 꽃의 자태가 단아하고 그 고결함이 군자와 같다고 해 선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엄동설한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아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에 들기도 한다.
옛 사람들은 매화를 ‘생각하며 피는 꽃’이라 했다. 또한 매향(梅香)을 ‘귀로 듣는 향기’라 했는데, 이는 매화향이 사람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해 준다는 뜻과 함께 떨어지는 꽃잎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고요해야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말이다. 매화의 미덕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닌가 한다.
동매(冬梅)라 했던가. 눈 속에 핀 매화는 더욱 운치를 더한다. 눈이 소복이 내린 겨울날, 한 여인이 공원에 피어난 매화를 감동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맑은 표정을 보면서 동심을 생각했다. 재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매화등걸에 꽃송이를 그린 ‘소한도(消寒圖)’를 벽에 걸어놓고, 날마다 한 송이 한 송이를 채색하면서 봄을 기다렸다는 이가 있고 보면 매화는 분명 꽃 중의 꽃이 아닌가 싶다.
매화는 늦겨울에서 초봄에 피는데 그 청초한 향기는 지친 영혼을 감싸준다. 애써 자신을 가꾸지 않아도 본래 그대로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 저 자태를 보라. 구불구불 휘어져 올라간 가지 끝에 담상담상 피어난 저 꽃망울!
땅에 씨가 떨어져 절로 나온 것을 강매(江梅)라 했다. 매화의 고향은 남녘이다. 저 제주도에서부터 피기 시작해 신부걸음으로 남도의 여수에 닿은 뒤 순천과 구례를 거쳐 중부지방까지 줄달음친다. 제주의 매화는 보통 1월 중순께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해가 갈수록 피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세계의 문제로 떠오른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꽃을 보니 반가운 한편으로 마음 한쪽이 불편한건 무슨 까닭인지.
매화는 격조 높은 꽃이다. 언 땅 위에 고운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 욕심을 떨쳐버리고 고고하고 순수하게 피어나는 그 모습에서 순수와 결백의 미를 엿볼 수 있다.
눈과 달빛으로 핀다는 꽃. 봄이 와서 매화가 피는 것이 아니라 매화가 피어서 봄이라 했던가. 어느 시골집 흙담 가에 홀로 핀 매화를 보면서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아 본다. 저기 저만큼 봄이 손짓하고 있다. 그 손짓 너머로 매화가 방싯방싯 웃고 있다.

■김동정·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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