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지속가능한 경영이 확산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갑과 을의 시혜적 관계에서 상생의 혁신을 이뤄가는 동반자 내지 협업자관계가 강조되고 있다. 현 정부에서도 이를 적극 반영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활동을 다양하게 전개하면서 특히, 일회성의 상생협력이나 갑이 을에게 베푸는 시혜성 활동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상생협력을 꿈꾸며 상생문화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상생협력이 기업문화에 까지 파급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제 더 이상 눈치 살피는 존재나 원가부담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혁신의 선순환을 이끌어가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고, 나아가 단순한 제도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상생을 위한 투자와 그 결실을 나누는 한국형 공급사슬관리를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일까?

일회성·시혜성 상생 탈피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니 대다수의 중소기업들은 실질적인 상생문화를 체험하기에는 너무도 힘겨운 현실의 장벽 앞에 서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같은 현실적인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상생 협력을 막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실질적 진입장벽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같은 원인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 전경련이나 기타 다양한 사회조직, 때로는 대기업 자체적인 상생의 노력이 가식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같은 원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구하지 않고 그저 나타나는 증상으로만 대응하려 했기 때문은 아닐까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수많은 하청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전국 350여만개 중소기업의 70%가 하청기업에 속한다는 분석도 있는 것과 같이 운좋으면 1차 하청업체에 속해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양지바른 기업환경에서 상생문화를 만들어가는 기업이 있는가하면, 불행하게도 4차, 5차의 하청의 고리 끝에서 작업하느라 상생의 구름낀 햇살조차도 받아본 적이 없는 기업들이 훨씬 더많은 현실에서 하나의 제도적 틀에서 함께 논의할 수 있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이 결국 일반인의 눈에는 ‘보여주기 위한 상생’으로 그치는 것처럼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것이다.

문화수준으로 승화돼야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혁신적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수입대체를 위해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병행해왔으나 대기업이 글로벌 아웃소싱 운운하고 나오면 결국 매년 기술혁신에 버금가는 가격인하를 감수해야 한다.
나아가 특별한 기술이나 사업성이 인정된 분야에 대해서는 타당성이 검증 되는대로 바로 대기업에 반강제적인 통폐합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상생의 아름다운 미덕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이 진정한 상상협력을 문화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현재 대기업의 방패막처럼 활용되는 1차 하청기업만의 상생이 아닌 4차, 5차로 넘어가는 모든 기업들의 공급사슬관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이 스스로 협상의제를 들고 나와 언제든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에 대해 열린 파트너 정신으로 혁신을 완성시킬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연전에 환율의 급락으로 인해 자동차 수출이 급감하면서 현대차의 일방적인 하청업체에 대한 원가인하 분담을 들고 나왔을 때, 주요 언론이 이에 대한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듣고자 취재에 나섰지만 300여개의 하청기업들 중에서 단 한 개의 기업도 언론의 인터뷰에 응할 수 없었다. 허울 좋은 상생의 문화에 이같이 강제로 참여하는 사태가 더 이상 진행돼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좀더 진지한 의미에서 상생협력의 진정한 혁신이 하청의 고리 끝에 있는 영세업체들에게서도 이뤄지도록 물질적, 기술적, 그리고 경영적 지원이 활성화돼야 한다. 문화란 우리가 숨쉬고, 활동화며 생각하는 모든 가치적 기준을 총칭한다. 상생문화도 이 같은 시각에서 대기업들의 단순한 시혜성 형식논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문화가 되어 더 이상 상생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거버넌스의 구축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 할 것이다.

최 용 록
인하대 교수·경실련 중소기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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