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다. 쪽문, 창문, 대문, 성문, 자동차문 ….
이러한 문들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유용해서 밖이 시끄러우면 창문을 닫으면 되고 날씨가 더울 때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면 시원한 바람이 방안에 들어온다. 또 도둑이 들어오지 않게하기 위해서는 대문을 굳게 잠그면 된다. 이러한 문들은 한결같이 손잡이나 문고리가 있어 밖에서 문을 열수가 있어 편리하다.
사람의 마음에도 문이 있다. 19세기 영국의 윌리암 홀먼 헌트라는 화가가 그린 그림 중에 ‘등불을 든 그리스도’라는 그림이 있다. 한밤중에 정원에서 그리스도가 한 손에 등불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문을 두드리는 그림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두드리는 이 문에는 다른 문과는 달리 손잡이가 없다. 어떤 사람은 문을 잘못 그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 그림은 ‘마음의 문’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마음의 문’은 보통의 문들과 달라서 손잡이나 문고리가 없기 때문에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밖에서 열어보려고 해도 열 수가 없다. 마음의 문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라서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아예 열어젖힌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꼭 닫힌 상태로 아무리 노크를 해도 열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즉 마음의 문은 마음먹고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마음먹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
어느 교수가 대학생들한테 ‘대화’하자고하니까 모두 자리를 피해버렸다고 한다. 그 교수는 항상 일방통행이었기 때문에 대화가 아니라 ‘대놓고 화딱지 내기’로 유명한 교수였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로래리 바커와 키티 왓슨은 20년 이상을 ‘경청’과 인간의 듣기 습관에 관해 연구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연구를 통해‘말을 하는 입이 아니라 말을 듣는 귀’가 모든 대화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처럼 최강의 설득은 경청에서 시작된다.
커뮤니케이션에서 경청이 중요하다는 것은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잘 실천되지 않는 것이 경청이다. 조물주께서는 자신의 말 보다는 타인의 말을 잘 들으라고 ‘입’은 1개를 만드셨고, ‘귀’는 2개를 만드셨지만, 타인의 말 보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경청에서는 귀담아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 원래 애들이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면 되지만 듣는 것은 공자가 이야기한 이순(耳順)은 60년이 걸린다고 하였듯이 경청은 쉽지가 않은 리더의 덕목이요, 공직자들이 꼭 지녀야할 마음가짐이다.
얼마 전, 한 정신과 전문의의 강의에서 한국 중년 남성의 절반 이상이 자폐 증세를 보인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란 일이 있다. 자폐란, 말 그대로 외부 세계로부터 벽을 쌓고 자신을 닫는다는 말이다. 즉 중년 남성들의 절반 이상이 남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공감하며 잘 들어주는 경청의 능력이 없다는 말은 자신만의 사고와 세계에 갇혀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고, 타인에 관심을 기울여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은 중소기업을 하고 있는 경영자들에게도 꼭 새겨들어야할 대목이다.
마음의 창의 소유자는 자기 자신이다. 마음의 문이 어느 정도 열려있느냐에 따라서 개인은 물론 가정, 직장, 사회 전체가 달라진다. 마음의 문의 크기와 열림의 정도는 의식과 발상을 바꾸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 세상은 많은 변화가 가능하다. 내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야만 상대방도 이를 확인하고 안심하고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창문을 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이다. 잘 들어주기만 해도 충분히 내 편을 만들 수 있다.
요즘 정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무언가 밸런스가 맞지 않아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회적 혼란과 이분법적 이슈들을 보더라도 분명 자기편에는 마음을 열지만 상대편한테는 꼭 닫아 놓은 마음들 때문에 발생하고 있고, 경청에 대해서는 인색하거나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아닐까.

가재산
(주)조인스H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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