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기회는 사람을 얻는 것

호설암(胡雪巖:1823~1885)은 청나라 말기에 태어나서 일세를 풍미한 사업가로 ‘장사의 신’이라고까지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손안에서는 어떤 일이든 이루어지고 그의 앞에서는 누구든 인재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돈을 다루는 일과 사람을 다루는 일에 귀재였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청나라가 망해가고 있는 난세였다. 나라곳곳에 민란이 일어나고 서양세력이 침투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그는 조그만 점포의 직원으로 출발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아버지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독학으로 글을 조금 익혔을 뿐이었지만 부지런하고 총명해서 금방 사업이 무엇이란 것을 깨달았다. 호설암에게는 타고난 강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발 먼저 상황을 파악해 그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직접 점포를 차리고 약재며 생사 유통, 군수품 조달에 뛰어들었다. 그의 점포는 이내 스물여섯 곳에 점포가 개설될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상대의 마음을 읽고 시장 흐름과 정세를 파악하는데 뛰어났다.
남들과 같은 시각 같은 행동으로는 결코 다른 사람을 이끌어 가지 못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얻는 것이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점원을 하던 시절, 관직 진출이 난감했던 왕유령(王有齡)이란 사람에게 수금한 은자 5백 냥을 빌려주었다가 가게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돈보다 사람을 먼저 얻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왕유령이란 사람의 됨됨이를 믿었고, 그에게 주는 금전적 도움을 투자라고 생각했다. 용기도 필요하지만,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과연 북경으로 간 왕유령은 벼슬자리에 올랐고, 출세를 하게 된 그는 호설암의 은혜를 잊지 않고 은자 5백 냥을 갚은 것은 물론, 호설암에게 군량미와 병기 등을 군납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덕분에 그는 무역업과 금융업에 돈을 댈 수 있게 됐고 거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후 호설암은 무엇보다도 인재 중심의 경영을 강조하게 됐고 “상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사람을 제대로 쓸 줄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호설암은 정치적 활동에 뛰어난 상인이었으며 금융업에서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중요시 한 것은 기회와 인연으로부터 재물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에게 공을 들이는 일을 최우선으로 했다. 호설암이 작은 자본을 가지고도 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을 쓰는 일에 능했기 때문이다.
호설암이 사람을 쓸 때 변함없이 지켰던 한 가지 원칙은 일을 맡긴 이상 의심하지 않는 것이었다. 왕유령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지만 좌종당(左宗棠)등 그는 많은 이들을 돕거나 거느리면서 자신의 사업을 키워나가는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는 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능력 있는 사람을 찾으면서 돈을 아껴서는 안 된다. 나의 비결은 돈으로 인재를 사는 것이다. 사물을 대하는 눈이 날카롭고 사람됨이 믿을 만하면 임금은 아무리 많이 줘도 아깝지 않다. 그러나 정말로 걸출한 인재를 얻으려면 돈을 많이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정(情)과 의(義)로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진정한 인재를 만들 수 있다.”
훗날 호설암은 1품 관료임을 상징하는 붉은 산호가 박힌 모자를 수여 받고 ‘홍정상인’이라 불렸는데 청나라 상인 중에서 그만큼 출세했던 사람은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은 그를 가리켜 “호설암이야 말로 봉건사회의 마지막 위대한 상인이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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