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ns, Germs and Steel’이라는 다소 특이한 제목의 책을 미국 기업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Diamond Jared라는 UCLA의 유명한 인류학자가 지은 책으로 오늘 날 각 인종 및 대륙 별로 경제적 격차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흥미롭게 조명한 것이 이채로웠다. 그 가운데 인구에 대한 내용은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더욱 놀라웠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농업의 노동 집약적 특성에 따라 대체로 다산이 장려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반면 식량이 있는 곳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수렵인들은 자녀를 많이 둘 수가 없었다. 부모 한 사람이 한 자녀 밖에 데리고 다닐 수 밖에 없기에 자녀 터울이 적어도 4~5년은 되어야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수렵시대 이야기인가. 현재의 상황이 수렵시대와 정확히 닮았기 때문이다. 동물도 자신의 영역에 먹이가 줄어드는 등 새끼를 키울 환경이 녹록치 않으면 본능적으로 개체수를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물며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필자가 결혼할 때만해도 월세라도 사랑만 있으면 살림을 차리고 방 한 칸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번듯한 아파트 전세라도 확보해야 장가를 들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결혼한 수하 여직원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강북의 20평대 초반의 아파트 전세가 2억원에 육박한다고 했다. 2억원이면 유망한 정규직에 취업해도 한 참을 모아야 하는 돈이다. 비정규직이 50%이상에 이르고 그나마 미취업이 적지 않은 실정을 보면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안정적인 주거가 확보되고 자녀에 대한 양육비를 감당할 자신이 있을 때 출산이 이루어지게 된다.
최근 조사한 185개국 중 우리나라의 출산률이 184위라는 것은 충격적이기 까지 하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보통 5남매에서 7남매를 둔 가정이 많았다. 이후 다산을 죄악시하다시피 한 사회적 분위기와 팍팍해진 삶의 조건이 맞물려 이제는 의도적으로 출산을 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혼률이 높아진 현실에서 자녀가 있으면 걸림돌이 되는 점도 고려된 듯 하다. 저출산에 대한 분석을 하다보면 양육비, 그 중 특히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에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결혼하지 않는 남녀가 급증하는 것도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최근 필자의 고등학교 동창생 모임에서 한 친구가 한 말이 마치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선언 같기도 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출판계의 기린아를 넘어 석권하다시피 할 정도로 눈부신 성공을 거둔 그녀에게 한 친구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무한의 자유를 누리는 지금이 좋은데 왜 굳이 결혼을 해 자신을 구속하느냐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신이 인간을 이긴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인간이 출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혼과 출산에 얽매이는 것이 인간의 잠재력에 얼마나 저해가 되는 지를 갈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없더라면 남자들은 신처럼 살고 있을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자질구레한 일상은 우리의 창의력과 신성을 마비시키는 것은 확실하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의하면 서기 2540년 (그는 포드 기원 632년이라고 했지만)에는 인간이 출산과 한 사람만 사랑해야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했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600년 이상이나 앞당겨 실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슬그머니 생겨난 각종 특수고등학교나 강남 출신들에 의한 몇몇 학교의 일부 대학입학 독점은 멋진 신세계의 ‘계급 예정실’을 연상시킨다. 더욱이 기혼자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사회 경제적인 불이익은 사실상 국가가 출산을 앞장서서 가로 막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요즘은 여성, 특히 전문직 여성들의 경제력이 만만치 않다. 이들이 아파트를 소유한 상태에서 결혼하면 1가구 2주택이 되어 세금폭탄을 맞게 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처분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부의 불균형을 방지한다는 긍정적인 차원도 있지만 여성 대부분은 경제력이 없다는 과거의 전제에서 만들어진 법으로 결혼해서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은, 분명 개인의 행복권을 결정적으로 침해하는 악법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제도적인 모순을 제거하는 한편 온갖 어려움도 견뎌내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라고 할 때, 사랑만 회복한다면 자녀 양육으로 인한 경제, 신체적 제약에 대한 압박을 넘어서 다시 정상적인 출산사회로의 복귀도 가능하리라 본다. 저출산에 대한 감성적인 접근을 병행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광훈
ASE 코리아 선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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