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견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쳤다. 지난 3월 18일 대통령이 주재한 제 51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와 금융위원회가 공동으로 마련해 보고한 ‘세계적 전문 중견기업 육성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핵심내용은 산업발전법에 중견기업의 범위 및 추진 근거를 도입하고, 중소기업의 졸업부담을 크게 줄여주며, 독일식 기술경쟁력 강화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도입함으로써 2020년까지 세계적인 중견기업 300개(World-class 300)를 육성한다는 것이다. 매우 야심찬 계획이다.
중견기업이란 산업의 허리부분에 해당되는데, 그간 중소기업과 대기업이라는 2분법적 정책패러다임 때문에 정책대상에서 소외돼 온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중소기업일 때는 160가지에 이르는 각종 지원을 받지만, 중소기업을 졸업하는 순간 대기업으로 취급돼 모든 혜택이 끝나버린다. 지원 끝, 규제 시작이다.
이 때문에 웬만큼 큰 기업일지라도 분사(分社)등의 편법을 사용해 중소기업으로 남기 위해 기를 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중견기업 대책이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1990년대 초부터 중견기업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던 필자로서는 정말 감회가 새롭다.

산업정책과 지역정책 조화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정책방향은 잘 잡혔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기업정책이 지역발전정책과 유기적인 관련 하에 추진돼야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산업정책이 경쟁력 향상과 효율성에만 역점을 둔다면 지방경제의 존립기반이 약화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비수도권의 경우,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토종기업들이 거의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중견기업 수준에 이르면 역외기업에 흡수합병 되거나, 본사를 수도권으로 옮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이번 시책의 집행과정에서 지방적 관점과 지방 중견기업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요망된다.
첫째로, 독일식 기술확산시스템을 도입해 시행할 ‘기업 주치의(主治醫) 센터’사업을 중소기업이 밀집돼 있는 지방 산업단지에서부터 우선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현실적 니즈가 큰 지역부터 시범적으로 실시해서 그 결과를 보고 전국적으로 실시범위를 넓히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된다. 기업이 30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근거리에서 각종 전문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지역혁신시스템(RIS)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산업의 허리 강화해야

이를 위해서는 독일과 같이 지방대학을 지방산업육성의 중심거점으로 삼아, 지역혁신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지방에 R&D 인력이나 대기업의 퇴직전문가들이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산업단지 인근 대학에 기업의 부설연구소를 집적시키고, 기업이 대학의 연구실을 활용하는 산학협력시스템을 권장하는 것은 매우 올바른 정책발상이다. 그러나 지방에 있던 기업연구소마저 수도권 쪽으로 옮기고, 입사 몇 달 만에 지방을 등지는 고급인력이 많다는 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로, 중견기업의 자금부담 완화를 위한 대책 중 기업은행과 함께 지방은행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책에는 ‘기업은행과 기존 거래관계에 있던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자금회수와 주거래은행이 변경되지 않도록 거래관계를 유지한다’ 고 돼 있는데, 여기에 지방은행을 추가시켜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2020년까지 300개의 세계적 전문 중견기업을 발굴·육성할 때 지방 중견기업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길 바라고 싶다. 지방에 본사를 둔 세계적 중견기업이 있어야 비로소 품격있는 선진국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요컨대 중견기업정책이 지역정책과 어우러져 산업발전과 지역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멋진 성공사례가 창출되길 기원하는 바이다.

최용호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