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다. 혼인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겪어야 할 통과의례이며 그 거룩한 의식을 통해서 새로운 가족이 구성되고 사회로부터 공적인 인정을 받는다.
사람은 혼인이라는 과정을 거쳐 보다 성숙해지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옛 사람들은 혼인을 관혼상제 중에서도 제일 높이 쳐주었다. 모두의 축복과 사랑 속에서 치러지는 혼인식이야말로 삶의 덕목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요즘 혼인 풍속도는 ‘인륜지대사’에 걸맞지 않게 너무 가볍고 단순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예식장 혼례도 한 몫 한다. 식 끝나기 무섭게 다음 번 하객들에게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예식장은 얼마나 천편일률적인가.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일부 뜻있는 신랑신부들은 좀 더 우아한 분위기에서 여유 있게 예식을 치를 수 있는 전통혼례나 야외혼인식을 선호하기도 한다.
전통혼례는 그러나 보편화된 일반 혼인에 밀려 그 모습을 구경하기 쉽지 않다. 어쩌다 야외 공원이나 향교, 고궁 같은 데서 볼 수 있을 뿐이다. 전통혼례는 신식혼례에 비해 절차가 까다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예스러움을 되살리고 우리 사회의 정체성을 되찾는다는 점에서 값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후세들에게도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되니 교육적인 효과도 크다 하겠다. 이제 우리 혼인문화도 신식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예식을 통해서 고유의 멋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전통혼례는 외형에만 치우친 나머지 본질이 왜곡되고 있는 일반 혼인식에 비해 여러 장점이 있다. 검소하게 치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식의 절차와 혼례복 등이 아기자기하고 독특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아한 멋과 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전통혼례는 지역이나 관습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된다. 예비 신랑 신부 두 집안 사이에 혼인이 합의되면 혼인 전 날 밤 신랑집에서는 예단과 함께 혼서(편지)와 청색, 홍색 치마 저고리감인 채단을 함께 넣어 신부집으로 보낸다.
혼수함에는 신랑집의 형편에 따라 채단만을 보내기도 하고 여유 있는 집에서는 다른 옷감을 더 넣어 보내기도 하는데, 이를 봉채라고 한다. 신부집에서 함 뚜껑을 열어 채단을 꺼낼 때 청색종이에 싸인 홍단을 먼저 꺼내면 첫 아들을 낳는다는 옛말이 전해온다.
혼례식은 전안례-교배례-합근례의 순서로 진행된다.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서 기러기를 전하면서 자손이 번창하고 정절을 지키면서 살겠다고 약속하는 의식을 ‘전안례’라고 한다. 여기서 기러기는 금실을 상징한다. 전안례를 위해 신부집에서는 미리 대문 안 적당한 곳에 멍석을 깔고 병풍을 두른 앞에 작은 상을 놓고 상 위에 홍색 보자기를 덮어 놓는다. 이 상을 전안상이라 하며 이것을 포함한 모든 시설을 준비해 놓은 곳을 전안청이라 한다.
신랑이 신부집에 들어오면 전안청으로 안내한다. 신랑이 전안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신랑 손에 쥐어준다. 신랑은 이것을 받아 상 위에 놓고 일어서서 두 번 절하고 물러선다. 신랑이 절을 하는 사이에 신부의 어머니가 기러기를 치마로 받아들고 신부가 있는 안방에 던진다. 이때 기러기가 누우면 첫딸을 낳고 일어서면 첫아들을 낳는다고 전한다.
‘교배례’는 신랑 신부가 마주보고 나누는 인사를 말한다. 교배례를 할 때는 대례상 또는 교배상을 미리 준비한다. 전안례가 끝나면 신랑은 대례상 앞으로 가서 동쪽에 선다. 신부가 원삼(圓杉)을 입고 손을 가린 한삼(汗杉)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수모의 부축을 받아 마주선다.
신랑 신부가 대례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뒤 먼저 수모의 도움으로 신부가 재배하고 신랑은 답으로 일배한다. 다시 신부가 재배하면 신랑은 답으로 일배한다. 이렇게 하면 교배례는 끝난다.
‘합근례’는 배우자와 하나 됨을 서약하는 절차로 잔을 주고받는 의식이다. 첫 번째는 신부가 신랑에게, 두 번째는 신랑이 신부에게 술잔을 건네며, 세 번째는 서로 교환한다. 이것은 해로(偕老)와 관련이 있다. 합근례는 반쪽의 표주박잔을 하나로 합친다는 뜻에서 부부가 된다는 의미를 담은 의식이다. 이때의 술을 합환주라고 하며 합근례가 끝나면 혼례식을 마치게 된다.
혼례식을 치르고 신부가 시댁에 와서 시부모를 비롯한 여러 시댁어른들께 드리는 인사를 가리켜 ‘폐백’이라 한다. 신부는 미리 친정에서 준비해온 대추, 밤, 술, 안주, 과일 등을 상 위에 올려놓고 시부모와 시댁의 어른들께 큰절을 하고 술을 올린다.
이 때 시조부모가 계시더라도 시부모를 먼저 뵙고 그 다음에 시조부모를 뵙는 게 도리이며 그 후 촌수와 항렬에 따라 차례대로 인사를 드린다.
요즘에는 신랑도 함께 인사를 드리지만 옛날에는 신부만 절을 하고 신랑은 부모 뒤쪽에 서 있었다고 한다. 며느리에게 절을 받은 시부모는 치마에 대추를 던져주며 부귀다남(富貴多男)하라고 당부한다. 이때 신부는 시부모와 시댁 식구들에게 줄 선물을 내 놓는다. 폐백상은 지역과 가풍에 따라 준비하는 음식이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대추와 편, 포, 닭 등을 준비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혼례는 이렇게 절차가 까다롭지만 이런 예식을 통해 옛 풍습을 익히고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전통혼례를 번거롭게 여기는 세태이지만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향기를 피울 것이다.

■김동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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