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약산업 전반에 걸쳐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도 수많은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의사와 약사, 제약사들 간에는 적정수준에서 이해의 평형관계가 유지되어 왔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4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쌍벌제 도입 법안이 가결되면서 의약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을 촉발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제약사들은 신규 랜딩과 처방 증대를 위해 의사에게 현금이나 각종 명목의 지원금을 관행적으로 지불해 왔고 이에 대해 제약사만을 처벌해왔었는데 이제는 이러한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뿐만 아니라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도 함께 처벌한다는 법안이 만들어 진 것이다.
그동안 우리 의약산업은 제약사들이 연구개발비보다 영업비에 더 큰 비중을 두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를 구축해 왔고, 많은 영세 제약기업들이 난립하는 지금의 구조가 만들어 졌다. 제약사들 입장에서는 한미FTA 체결과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 등으로 중소제약사들의 존립이 어려워지던 차에 쌍벌제 도입으로 인해 그 동안 유지해온 영업의 근간을 모두 상실하게 된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쌍벌제의 도입으로 주목을 받고 있던 대형제약사들의 영업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나 결국에는 자금력이 부족한 소형제약사들이 경쟁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의사의 입장에서는 건강보험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저보험료와 저수가, 저급여 체제가 구축되면서 정부와 의료계, 제약업계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보험약가를 높게 책정하게 되었고, 결국 지금과 같은 리베이트 관행이 자리를 잡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현 정부의 의료선진화 방안에서 나오고 있는 영리법원설립이나 의사 공급확대 방안은 의료계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고, 이번 쌍벌제 도입에서 모든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의료계에서도 쌍벌제에 대한 강력한 반발에서 의약분업 재평가와 약가제도 개선 등을 전제조건으로 한 쌍벌제의 일부 수용으로 입장을 선회하고는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논란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약사들은 의약분업으로 인해 이번 쌍벌제의 논란에서는 비켜설 수 있었지만 의사와의 신뢰를 쌓을 틈도 없이 시작한 의약분업으로 인해 대체조제나 성분명처방과 같이 아직도 많은 갈등의 소지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에는 ‘의약품 약국외판매’와 ‘일반인 약국개설’등이 새로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약사 인력 증원을 놓고는 약사회와 약대가 대립하고 있다.
많은 현안들 중에서도 지금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리베이트는 분명히 부끄러운 관행이며, 의약품 유통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사실 리베이트의 문제는 의료계에서 먼저 나서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의약품 리베이트 문제에 있어서만은 처방권자인 의사들이 힘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제약사들 또한 영업의 근본 틀을 바꿔야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제약사들이 추구해 왔던 리베이트에 의존하는 영업에서 탈피하여 기술개발을 통해 의사들이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제품들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개발투자를 늘려 신약이나 개량신약과 같은 차별화된 제품을 갖추고, 다품종 소량생산에서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지금 눈앞에서 나타나는 증상인 리베이트 문제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관행이 생겨난 원인을 잘 분석하여 적절한 처방을 함께 해야 잘못된 관행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가는 것은 분명히 옳은 일이나 이번 쌍벌죄 도입으로 시작된 여러 갈등은 국민의 건강과도 직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제약업계에서는 사활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며, 국가의 의료보험재정에도 밀접히 관련된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신속하고 정확한 처방이 요구되고 있다. 실제로 제약업계는 쌍벌죄 도입으로 인해 의료계의 처방형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예의 주시하며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고 의료계에서는 쌍벌죄 입법에 앞장선 일부 제약사를 실명으로 거론하며 처방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엄포도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국내의 많은 제약기업들이 M&A시장에 매물로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제약사들간에 새로운 경쟁의 룰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의사와 약사, 제약사들 사이에 새로운 이해의 평형관계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쌍벌제 도입으로 시작된 이번 의약산업의 격동이 향후 우리나라 의약산업의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의료계, 제약업계가 모두 지혜를 모아야할 것이다.

김경수
(주)셀트리온 화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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