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울음소리는 각자 개성이 있지만 뻐꾸기만큼 신비롭고 특이한 것도 흔치 않다. 울음소리야 주관적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신비롭다는 데는 대부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로 뻐꾸기 소리를 들은 사람은 많아도 이 새를 직접 본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 뻐꾸기를 며칠 전 뒷동산의 스카이 패스 (필자가 명명한 정상 부근의 평평한 산길)에서 봤다.
나이 지긋한 등산객들에게 물어 보니 칠 십 평생에 뻐꾸기를 직접 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뻐꾸기는 실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뻐꾸기는 무지개를 닮았다. 저 산 기슭에 있는가 싶어 다가가면 어느 새 다른 편 봉우리에 가 있다.
월드컵은 우리에게 뻐꾸기나 무지개와 같은 존재였다. 그 벽이 얼마나 높고 험한 것이었는지는 우리 국민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멀게만 느껴졌던 월드컵이 우리 나라는 물론 필자 가까이 다가온 적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축구를 즐겼던 필자는 2002년 월드컵 개막전이 열리던 상암구장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라 생각했던 프랑스와 세네갈의 경기를 아주 가까이서 관람하게 됐다. 축구 실력과 국력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 대회 월드컵 챔피언이자 세계의 손꼽히는 열강 프랑스라는 후광효과 때문인지 세네갈은 더욱 작아 보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프랑스는 졸전으로 일관하더니 골까지 허용하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박수를 쳤다. 연고가 없을 때는 약자를 응원하는 심리가 발동한 것이었다. 바로 그때 불과 이 미터 남짓한 앞자리로부터 프랑스인 듯한 남자의 시선이 따갑다는 것을 느꼈다. 남의 고통을 고소하게 생각한 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었지만 남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우리가 최근 겪은 단장의 고통은 주변국 입장으로 볼 때 자국의 긴급한 현안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계기로 더욱 결속하게 됐다. 우리 민족만의 끈끈한 정은 수 천 년에 걸친 전란을 통해 동고동락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남녀가 함께 위기나 모험을 함께 겪으며 갑자기 강렬한 사랑으로 발전하는 영화가 적지 않은데 심리학적으로 볼 때 상당히 근거가 있고 우리 민족이 가진 결속력의 원천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팀들의 전력과 그동안의 성적을 정밀 분석한 책자를 우연히 얻게 돼 월드컵을 즐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막상 경기를 치뤄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어떤 때는 피파 랭킹이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변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실제로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기업의 세계에서도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시장 점유율이 한 순간의 충격에 의해 맥없이 무너지는 일이 적지 않다. 이변이 일어날 확률이 적다고 애써 무시하는 것은 나태함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최근에 경쟁업체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유명한 업체에서 운영하는 SSM이 며칠 전 동네에 문을 열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가게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경쟁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주변에서 영업 중인 많은 동네 슈퍼가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앉아서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매장에 없는 상품을 체인망을 통해 당일 배송한다든가, 바코드 스캐너를 사용해 구매목록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 또는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하는 등 사소하게 보이는 편의에도 반응하는 고객이 분명 있다.
미국 내 항공운송 산업의 경우에도 대형업체 틈바구니에서 승승장구하는 강소 항공사들이 있다. 이른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주효한 것이다. 동네 슈퍼의 최대 강점은 접근성과 고객의 구매성향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가 세게 보인다고 주눅이 들어서는 안된다. 유로 챔피언이 사실상 월드컵 챔피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지만 2004년 유로 챔피언 그리스는 이번엔 우리에게 2:0으로 완패했다. 동네 슈퍼도 이런 자신감과 상대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이기지 못하리라는 법이 없다.
동네 슈퍼는 게오르규의 25시에 나오는 잠수함 속의 흰 토끼를 연상시킨다. 흰 토끼가 죽으면 잠수함 내의 산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지표가 되듯이 동네 슈퍼의 몰락은 소상공인의 기반이 상실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늦어 신조차 어쩔 수 없다는 24시도 훨씬 지난 25시가 되기 전에, 소상공인 자신들의 혁신을 위한 자구노력도 병행돼야 하겠지만, 관계당국의 정책적 결단이 있어야 하겠다.

김광훈
ASE 코리아 선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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