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0월 대우실업(당시 이름) 부산공장에서 드레스셔츠 한 장에 1달러를 받고 수출했다. 국내가격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값이었다. 국내시장에 팔면 엄청나게 큰돈을 벌 수 있는데, 시판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신임 비서가 김우중 사장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사장의 답은 아주 간결했다. “우리 공장 물건 시장에 나가면 (우리나라) 봉제공장 다 죽어.”, “수출만 해도 이익이 나는데 재봉틀 몇 대 놓고 먹고 사는 사람들 모두 문 닫게 하면 죄 받지.” 이어진 그의 설명이었다 (김용섭이 지은 「김기스칸 vs 칭기즈칸」 144~5쪽).
돈벌이만 되면 중소기업이 하는 사업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거나, 원자재가격은 치솟는데 납품단가는 올려주지 않는 큰 기업들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 전화 한 통으로 주문량을 뒤집고 납품가를 후려치고, 불공정거래나 기술 뺏기를 일삼는 ‘나쁜 대기업’에 대한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러한 판국에 대박을 터트릴 줄 번연히 알면서도 중소기업과의 공생을 위해 세계시장으로만 눈을 돌린 30년 전의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다.
최근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집단에서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방안을 대대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1조원 규모의 협력사 지원 펀드 조성을 포함한 ‘상생경영 7대 실천방안’을 발표했다.

대기업 상생협력방안 ‘봇물’

LG는 고충처리 전담 창구의 신설 등 ‘상생협력 5대 전략과제’를 결정했다. 이밖에도 현대·기아차, 포스코, SK, KT 등이 기술협력, 교육훈련, 구매협력, 마케팅, 컨설팅 지원 등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룹차원에서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상생경영을 위한 아이디어를 총동원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최근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2~4차 협력업체에 대한 높은 관심이다. 그간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 사이의 갈등이나 마찰은 상당히 해소되었으나, 2~4차 벤더로 가면서 문제의 골이 깊은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상생협력 방안 속에 1차 다음의 중소협력업체에 대한 자금·기술·교육 지원이 많이 포함돼 가고 있는 것은 만시지탄은 있으나 불가결한 일이라 하겠다.
정부의 닦달에 의해서 이건, 그룹 자체의 판단에 의해서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손을 맞잡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기업생태 간 경쟁으로 심화된 글로벌 경쟁체제하에서 도급기업과 협력 중소기업과의 상생노력은 필수적 생존요건인 것이다.

中企 사회적 책임도 중요

여기에서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상생은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중소기업을 지원·육성하고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필요로 하는 자원과 역량을 수평적으로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상으로 중소기업의 책임이 강조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부품 등을 훌륭한 품질조건을 갖추어 안정된 가격으로 제때에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보다 좋은 제품을 값싸게 만들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독창적인 기술력만 갖고 있다면 거래처를 다변화할 수 있고, 대기업이 찾아와 단가인상을 먼저 제의할지도 모른다. 어느 곳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그저 그런 기술과 품질의 제품을 갖고 대기업의 횡포에 분노하거나 정부의 대책에 매달리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이러한 뜻에서 정부의 지원정책은 중소기업의 기술개발과 자립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지식경제부가 지난해 기업의 R&D지원을 위해 투입한 예산은 약 1조5천억 원,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지원된 비율은 6대4 정도로 중소기업의 몫이 많다. 그러나 10억 원이 넘는 대형프로젝트는 대부분 대기업 중심 컨소시엄이 사실상 독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조 원씩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은 원칙적으로 그들의 자금으로 R&D를 수행해야 한다. 정부의 R&D자금은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에 집중토록 하여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한국형 스몰자이언츠를 많이 탄생시키는 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발전을 촉진하는 현명한 정책이 될 것이다.

최용호
(사)산학연구원 이사장,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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