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것이 상생(相生)이고 동반성장이다. ‘너 죽고 나 살자’는 게 상생일 수 없다. 상생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한 거래를 통해 함께 성장해야한다는 걸 강조하면서 자주 사용된 말이다.
대기업에 납품하며 기업 활동을 하는 구조에서는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선처와 배려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기업이 그런 배려를 계속 할 것이며 또 어떤 기업이 그런 배려에 기대어 기업경영을 할 수 있는가.
대기업이 부당하게 납품 단가를 깎아도 중소기업은 거래 중단을 각오하지 않는 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게 엄혹한 현실이다. 이런 업체를 대신해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조정 신청권을 부여하는 등 불공정거래관행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을 것인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대기업을 윽박지르거나 대기업 회장들에게 중소기업 지원약속을 받아낸다고 상생이 보장되지 않는다. 대·중소기업 대표자들을 모아 놓고 다짐을 하고 사진 찍는다고 상생이 되는가. 그런 다짐을 어디 한두 번 했는가. 실천이 없는 외침은 일회성 공표효과만 있을 뿐이다. 중소기업의 기대만 부풀려놓으면 실망감은 더 커진다.
기업은 이익을 내야하는 조직이다. 선심을 베풀거나 또는 남의 선심과 호의를 기대하며 거래를 하고 기업을 경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공정한 거래다.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를 따지는 일은 어렵다.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우선 옳은 제도를 만들고 법과 규정을 지키는 일부터 하는 게 공정거래의 출발일 것이다.

중소기업도 글로벌 경쟁력 갖춰야

말로는 상생이라고 하면서 대기업 구매담당자는 객관적 근거도 없이 자의적으로 납품대금을 깎는다. 구두로 발주해놓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일방적으로 위탁을 취소하거나 불공정계약서 작성을 강요하기도 한다. 교묘하게 법규를 피해가며 중소기업 쥐어짜기, 중소기업 죽이기를 하는 사례는 흔하다.
이런 불공정거래관행부터 없애야한다. 불공정거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거래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중소기업 간의 거래에도 불공정 사례가 빈발한다. 기업규모와는 관계없이 어떤 거래든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는 교묘하게 부당한 거래를 강요한다. 이러한 불공정거래관행을 없애지 않고 상생을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의지가 강한 건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경쟁력 없는 기업을 연명시키는 선심정책을 중소기업정책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건 포퓰리즘이지 중소기업 지원정책이 아니다. 정책당국은 모든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서도 안 된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써야한다.

경쟁력있는 기업간 협력이 진짜 상생

중소기업 정책이 어떻든 대기업은 인식을 전환해야하고 중소기업은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야한다. 중소기업 스스로 기술력을 앞세운 제품을 만들 수 있어야한다. 그래야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고 상생을 이야기할 수 있다. 가격에만 매달리는 기업경영으로 버티기는 어렵다. 하루 이틀 기업하려는 게 아니라면 기술개발과 품질개선에 매달려야한다. 무엇을 만들건 무엇을 하건 세계최고를 지향하는 기업경영을 하지 않고 살아남을 길은 없다. 기업이 스스로 변화해야하는 이유다.
상생논리는 정치에도 국제관계에도 적용된다. 여야가 싸우더라도 ‘너 죽고 나 살자’는 싸움을 하면 정치는 실종된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난 10월 22~23일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환율을 시장에 맡겨 결정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내 세계 환율전쟁을 풀 실마리를 찾았다. 각국이 자국 이익만을 생각하고 환율전쟁을 벌이면 세계경제는 혼란과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상생의 길을 찾은 것이다. 1930년대 경쟁적 평가절하는 모든 나라의 경제를 침체시켰고 결국 승자는 없고 모두 패자가 됐다는 환율전쟁의 쓰라린 종말을 떠올리고 그런 결정을 했을 것이다.
상생을 하기 위해서도 경쟁은 필수적이다. 경쟁을 하지 않고 발전하는 길은 없다.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협력하는 게 진짜 협력이고 그런 협력으로 성장하는 것이 상생이고 동반성장이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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