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일 신년 방송좌담회를 통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의 ‘과학벨트 입지 원점 재검토’ 발언 이후 과학벨트를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충청권 민심과 그 외 해당 지역의 민심이 충돌하고, 여당과 야당이 충돌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는 여당과 야당 내에서조차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세종시 때문에 나타났던 국민적 갈등이 또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 과학벨트 입지 선정 문제에 앞서 세종시와 4대강사업과 같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대형 국책사업들이 정치공약으로 시작되는 것을 자주 봐왔다. 사안의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정치적 공약으로 시작된 사업은 항상 정치적인 반대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공약을 주도한 세력 역시 정치적인 이유로 사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 관점 이외에 경제적, 과학적, 환경적 관점들은 모두 배제되거나 정치적 논리에 이용됐을 뿐이었다.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이런 사안을 적절한 시기에 해결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끌고 온 정부나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특별법’을 무시하고 정치적 공세를 시작하는 야당 모두에게 진정으로 국가의 과학기술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신도시나 신규 공단을 만들거나, 신공항을 건설하는 등의 사업은 어느 정도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추진이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과학벨트 입지선정은 이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산업공단을 새로 만드는 경우라면 정부가 대기업의 공장을 유치하는 수준에서 해결이 되는 일이었지만 과학벨트는 단순히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기업의 연구소를 유치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구단지의 가장 큰 핵심인 우수한 연구인력의 확보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또한 민간기업의 연구소는 해당 기업의 공장뿐만 아니라 본사와도 밀접한 네트워킹이 가능한 위치에 있어야 하고, 정부출연 연구기관 또한 이들 민간기업의 연구소들과 밀접한 네트워킹이 가능해야 한다.
지금 영남과 호남 그리고 경기도가 과학벨트의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과학벨트 선정이 뜨거운 정치쟁점으로 비화됐기 때문에 향후 입지가 어떻게 선정되더라도 그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과학벨트는 우리 기업들이 지금까지의 모방기술에서 탈피해 신기술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인프라이며 최소 30년을 바라보며 설계돼야 하는 사업이다.
과거 다른 국책사업처럼 절대로 정치적 상황에 의해 휘둘려져서는 안 되며 특히 지역적 안배나 정치적 고려는 철저히 배제돼야 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특별법’에 따라 정치적 의도를 떠나 과학적 기준에서 공정하게 입지를 선정해야만 그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과학벨트 선정이 이와 같이 큰 쟁점이 된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로부터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 정부의 중요 국책사업이 선거공약에서 다루어진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선거공약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공약이 아니라 득표를 위한 전략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치적 고려가 선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의 경우에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각종 선거의 출마자가 내세우는 선거공약에 중요한 국책사업이 포함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치적인 이유로 특정지역을 거론해 정치적 분란이나 정책적 오류를 야기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정치적 선동이나 지역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김경수
(주)셀트리온 화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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