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퍼터센 감독의 1995년작 ‘아웃브레이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 한 마리 때문에 발생하는 재앙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에서는 치사율 100퍼센트의 신종 바이러스가 등장한다.
리차드 매드슨의 동명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2007년작 ‘나는 전설이다’는 바이러스가 감염시키지 못하는 면역체를 가진 네빌박사의 백신 개발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암 백신으로 인한 바이러스로 2012년 인류가 멸망하고, 딱 한사람만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이다.
이들 작품외에도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영화로 ‘눈먼 자들의 도시(2008)’와 ‘블레임 인류멸망2011(2009)’, ‘28일 후(2002)’, ‘12 몽키스(1995)’ 등이 있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영화적 상상력을 충분히 활용해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영화에서 신종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지옥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번 겨울동안 구제역에 감염된 수많은 가축들을 생매장하는 현장은 영화 속의 지옥이 단순히 과장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감염된 가축들의 살처분은 약물을 통한 안락사를 해야 했으나 작년 말 이들 약물이 모두 소진되면서 생매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들이지만 그 많은 생명들을 산 채로 땅에 묻는 것을 덤덤히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살처분 현장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지옥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 10명중 9명이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겨울에는 구제역뿐만이 아니었다. 작년 12월엔 신종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남성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또한 한동안 잠잠했던 조류독감(AI) 조차도 기승을 부렸다.
이러한 바이러스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찾아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인류사와 줄곧 함께 해왔으며 앞으로도 인류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한 약물을 계속 개발하고 있지만 바이러스는 자신을 변형시켜가며 인간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영화에서처럼 바이러스가 인류를 멸망시킬 존재는 아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숙주인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공생을 선택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독성이 강했던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 감염된 환자들이 1주일 만에 사망했고, 그 결과 바이러스 자체도 사실상 멸종됐다.
그러나 이러한 바이러스들은 환경의 변화로 인해 변종바이러스가 생기고 이것이 인간과 서로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체를 공격하게 된다는 것이 정설로 돼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와 에이즈는 밀림을 개발하거나 침팬지를 무분별하게 잡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전염된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 국민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돼지인플루엔자는 작은 공간에서 육류를 더 많이 생산해 내기 위한 인간의 욕심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한 피해는 국가경제 전체에 걸쳐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축산관련 농가나 중소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고, 각종 통행이 제한됨에 따라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국민들의 식자재에 대한 두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 충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이러스가 멸종시킬 수 없는 대상이라면 우리는 그들과 현명하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인류의 행복을 위한 개발을 안할 수는 없겠지만 자연환경과의 공존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축산업계의 경우 가축들의 위생상태를 개선해야 하며 비좁은 사육환경으로 인해 가축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번 구제역으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에 특별경영자금을 지원하고, 축사 위생시설 관리를 위해 축산업 허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항상 거론되듯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는 앞으로도 계속될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 축산업계의 위생관리뿐만 아니라 개발과 환경파괴의 양면성을 가진 주제를 잘 다뤄야 하며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대응 매뉴얼을 체계적으로 확보하고 홍보해 평상시나 비상시에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하도록 준비해 감염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약품의 확보와 신종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신약개발에 대한 계속적인 투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경수
(주)셀트리온 화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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