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너무 더디게 찾아왔다. 겨울 옷을 채 벗지 못하게 기승을 부리던 꽃샘추위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더니 차라리 덥기까지 하다. 눈에 띄게 꽃망울이 터지고 있다.
생강나무,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벚꽃까지 때 없이 피어나고 있다. 밭둑, 논둑에서는 나물 뜯는 아낙들의 손놀림도 바쁘다. 이천 백사면과 양평 개군면의 산수유 꽃은 지금 얼마만큼이나 피었을까?

하얀 소나무는 어떤 모습일까?
경기도 쪽에서는 산수유 꽃 소식이 한창이다. 봄이 늦게 찾아오는 이천에서는 다른 곳보다 늦게 노란 산수유 꽃이 만발한다.
이곳 백사면 경사리, 도립리, 송말리 일원에서는 해마다 ‘백사 산수유축제’가 열린다. 보편적으로 3월말 경에 만개해서 4월초, 중순까지 마을 전체가 노란 산수유 꽃으로 휘 감긴다.
이천에서 산수유 마을가는 길에 백송(천연기념물 제253호, 백사면 신대리 산32 외 7필)을 찾는다. 비좁은 마을 길을 따라가면 230년 정도 먹은 높이 15m, 가슴높이 줄기둘레가 2.31m라는 하얀 소나무를 만난다. 소나무 줄기가 하얗다. 신기하기 이를데 없다.
조선시대 전라도 감사를 지낸 민정식의 조부인 참판 민달용의 묘소에 기념식수한 것이라 한다. 예산 추사 집에서 본 것보다 훨씬 수령이 오래돼 보인다.
전국에 남아 있는 8그루 중 최고의 자태를 자랑하는 ‘흰 소나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물게 있는 희귀종침엽상록수로 짧은 가지 끝에 세 가닥의 잎이 뭉쳐나고 끝이 뾰족하며 짧다.
누워서 하늘 향한 소나무의 가지들을 바라본다. 기묘하게 뒤틀린 흰 나뭇가지에서 눈꽃이 떨어질 듯, 눈이 부시다. 흰 소나무의 가지는 무성하게 뻗어 나가 있다.

도립리 산수유 마을에는 육괴정과 시목 있어

그리고 경사리를 지나쳐 도립리로 들어간다. 구제역 때문에 축제를 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제 12회 축제를 마쳤다. 비록 축제는 끝났지만 관광객들은 많고 산수유 막걸리 등을 파는 난전은 계속 영업을 하고 있다.
도립리에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은 이곳이 시목지이기 때문이다. 마을에는 수령이 100년이 넘는 것에서 500년 가까이 된 것까지 있다. 산수유는 어느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편중된 것이 아니라 논둑이나 밭둑 혹은 집 주변으로 흩어져 있다. 꽃 귀한 철에 피어나기에 사랑을 받지만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꽃이 산수유기도 하다.
올해는 동해를 입어 예년보다 꽃 색이 선명하지 못하고 탐스러움도 사라졌다. 그래도 봄 향기만은 가득차 있다. 특히 도립리에는 육괴정이 있다. 조선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 때 난을 피해 낙향을 한 남당 엄용순이 건립했다. ‘육괴정’이란 이름은 당대의 선비였던 모재 김안국, 강은, 오경, 임내신, 성담령, 남당 엄용순 등 여섯 사람이 연못 주변에 각자 한 그루씩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시멘트로 발라 몸을 지탱하고 있는 고목이 다 된 느티나무 3기만 남아 있다. 산수유 나무도 이 즈음에 심었다고 한다. 선비들이 심기 시작했다는 유래로부터 ‘선비꽃’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한적해서 좋은 송말리에서 만난 영원사 천년고찰
도립리 마을을 벗어나 송말리로 들어가면 산수유 꽃 군락지를 만날 수 있다. 도립리에 빠지지 않은 풍치지만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 한적하게 여가를 즐기기에는 아주 좋다.
온 마을이 산수유꽃이 뒤덮혀 노랗게 물이 들었다. 밭 사이에 난 쑥과 냉이, 달래를 캐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도 있다. 마을 안쪽에 영원사가 있다. 영원사는 이천에서 가장 높다는 원적산(634m)의 원적봉 북쪽 기슭인 양지바른 터에 자리 잡았다.
신라 선덕여왕 7년(638)에 해호가 창건했으며, 창건 당시에는 영원암이라 하였다. 고려 말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한다. 창건 당시 수마노석으로 약사여래좌상을 조성했다는 약사전에 앉아 절 마당을 바라본다. 앞이 환히 트인 마당에는 중창할 때 혜거가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보인다. 파도처럼 물결을 치는 원적산 산능선이 살갑게 눈 속을 파고 든다. 머지 않아 온 산하는 파릇파릇 연녹색으로 변해갈 것이다.
시간 넉넉하다면 원적봉(563.5m) 주봉인 천덕봉 기슭의 율수폭포를 찾아보면 어떨까? 또 인근 송말2리에는 내하숲과 연당이라 불리는 비보못이 있다. 풍천 임씨 문중에서 마을 앞면이 트여 허전한 연화부수형의 마을 형국을 보완하기 위하여 2,000평 정도의 숲을 조성하고 연못을 만든 것. 이곳에서도 산수유를 감상하는데 그다지 나쁘지 않다.

용을 닮은 소나무, 반룡송 기묘해
송말리에서 나와 조금 더 가면 반룡송이라는 팻말을 발견하게 된다. 밭 가운데로 가서 보면 땅 옆으로 요상한 모양으로 뻗어나간 소나무 두 그루를 만나게 된다.
소나무가 용트림하면서 휘감은 모습이 마치 하늘로 승천하는 용과도 같다고 해서 붙여진 반룡송이다. 천연기념물 381호이며 이천 9경중 6경으로 지정되어 있다.
500년 가까운 수령을 가진 이 나무는 도선국사가 팔도의 명당을 두루 찾아 다니다가 함경도 함흥, 서울, 강원도 통천, 충청도 계룡산과 이곳 백사면에 한 그루씩 심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나뭇가지가 계속 꼬이면서 옆으로 자랄 뿐, 위로는 크지 않는 다고 한다. 소나무 껍질은 뱀 껍질을 연상케 한다. 반룡송으로 만족하지 말고 이왕 내친 김에 양평 개군면 산수유 마을도 찾아보자. 백사면에서 시작된 산수유는 이천을 비롯해 인근하고 있는 여주와 양평쪽으로도 개체수가 번져 나갔다.

개군면 내리, 주읍리에도 산수유 꽃 만발
개군면 내리와 주읍리에서도 어느 해부터 산수유 축제를 시작했다. 올해는 구제역으로 인해 축제는 열지 못했으나 여전히 산수유는 꽃을 피웠다.
이 마을에는 수령 20년에서 200여년 이상 된 산수유 7천여 그루가 구불구불한 논두렁 밭두렁 사이로 흩어져 있다. 이곳 또한 동해로 인해 예년보다 선명한 색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산수유 꽃 감상지로는 충분하다. 오히려 찾는 이 적어서 한적한 시골 정취를 느끼기에 참으로 좋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시골 내음 물씬 풍기는 곳에 개군 산수유 사랑방(010-4707-1914)이라는 곳이 있다.
늘 산수유차를 끓여 놓고 오며가며 마시게 해 놓다. 가격은 자율적으로 넣으면 된다. 벌을 치는 주인의 야문 손끝이 집안 가득하다. 민박도 가능하고 단체가 머물면 장작불 지펴 무쇠솥에 보리밥을 삶아 낼 수 있다고 한다. 걷기 좋아한다면 주읍산(583m) 산행을 해도 좋을 일이다. 주읍산은 추읍산, 칠읍산으로도 불린다.
주읍산이라는 지명은 산의 형세가 용문산을 향해 읍(揖)하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산 지명이다. 칠읍산 지명은 맑은 날 정상에서 보면 ‘읍’이 일곱개나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등산코스는 주읍리~서적골~무쇠말백이~정상으로 이어진다.

여행정보
○ 대중 교통:서울 강남, 강변 터미널에서 이천행 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운행. 이천종합버스터미널(031-635-5831, www.icheonterminal.kr)에서 각 방향 버스를 이용. 산수유 마을은 터미널에서 백사면 현방리 버스(23-8번) 이용해 도립리 하차.
○ 찾아가는 방법:중부고속도로-서이천IC-삼거리에서 좌회전(1.5km)-3번 국도-신둔 방면으로난 70번 지방도로-백송보고 다시 원 길로 나와 직진하면 경사리~도립리~송말리-백송-여주 금사방면으로 가다 이포대교 건너서 양평방면으로 난 37번 국도 이용-개군면에서 팻말따라 우회전-내리-주읍리 순이다.
○ 추천 별미집:이천쪽에서 청목(031-634-5414), 임금님 쌀밥집(031-632-3646) 등에서 쌀밥을 먹으면 된다. 여주 이포대교를 건너면 유명한 천서리 막국수촌이 있다. 봉진막국수(031-882-8300)가 원조이고 그 외에 여러 곳이 밀집되어 있다. 장모님 손만두(031-881-6330, 뚝배기 만둣국)도 있다. 개군면에는 개군 할머니 토종순대국(031-772-8303)이 맛있고 한우도 유명하다. 그 외는 산수유 마을 꽃 숲에서 도시락을 맛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도립리에서는 산수유 막걸리와 차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팔며 특산물도 다양하다.

여행 포인트
○ 설봉산과 이천온천:이천에는 설봉산(394m)이 있으며 신둔면, 사기막골 등에는 140여개의 가마가 밀집되어 있는 이천 도예촌이 있다. 이천 온천은 명망 있는 곳이다. 미란다 호텔의 스파플러스(031-633-2001)와 설봉호텔(031-633-6301)등의 온천이 있으며 특히 테르메덴(031-645-2000, www.termeden.com)의 시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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