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은 귀에 익숙하나 ‘서촌’은 낯설다. 조선시대의 궁, 경복궁 서쪽, 영추문 부근에 위치한 마을을 서촌이라 불렀다. 세종대왕이 태어났고 영조의 잠저가 있었다. 그리고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았다. 근대기에는 문인들과 화가들이 예술혼을 불태웠던 곳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박노수, 시인 윤동주, 이상, 노천명 등.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에는 역사, 문화 향기가 가득하다. 배회하다 문득 고개를 들면 인왕산의 너른 품이 환하게 웃고 있다.

경복궁역 4번 출구로 시작되는 통의동, 효자동 골목 탐사
최근 들어 서촌의 역사적 잠재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서울시는 서촌 일대 한옥 663가구를 보존하는 계획을 밝혔고 종로구는 ‘걷기 좋은 골목길 20선’을 발표했다. 하지만 서촌을 탐방하려면 미로를 헤집고 다녀야 한다. 통의동, 창성동, 효자동, 청운동, 신교동, 궁정동, 옥인동, 누상동, 누하동, 필운동, 체부동 등. 골목을 돌아 나서면 마을 이름이 바뀐다. 오죽했으면 이곳을 조선시대에는 위항(委巷, 좁고 꼬불꼬불한 작은 길과 작은 집이 모여 있는 동네)이라고 불렀을까?
경복궁역 4번 출구로 나와 ‘통의동 백송 터’를 시작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통의동은 조선시대 창의궁(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머문 잠저)이 있었다. 1908년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으로 폐궁되고 8.15광복 이후 귀속재산으로 접수, 분할되어 현재에 이른다. 그 통의동 골목 안쪽에 백송터가 있다.
백송터 주변에 추사 김정희의 집이 있었다. 영조의 딸 화순옹주는 당시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에게 출가했다. 김한신은 김정희의 증조부다. 결국 화순옹주는 김정희의 증조모가 되는 셈. 창의궁과 김정희 집터가 비슷한 위치인 것은 이런 가계도와 연결되어 있으리라.
효자로 큰 길로 나와 청와대 방면으로 가면 영추문의 바로 앞에 ‘보안여관(통의동 2-1번지)’이 있다. 이곳은 수많은 문인, 화가들이 투숙했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1936년 22살의 서정주 시인은 ‘보안여관’ 에 하숙했고,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시인 등과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들게 된다.
보안여관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가면 갤러리와 북카페 등 다양한 문화공간이 조성되고 있다. 주변에 해공 신익희 선생 고택(서울시 기념물23호, 효자동 164-2호)이 있다. 신익희선생 고택 앞 골목에 쌍홍문 표지석이 있다. 쌍홍문은 임천 조씨 가문의 조원의 아들 희정과 희철 형제가 임진왜란 때 어머니가 위험에 처하자 목숨을 희생한 효행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두 개의 홍문. ‘동국여지비고’에 따르면 이들 형제의 효행으로 인해 조원이 살던 집 앞을 ‘쌍효자 거리’라고 부른다고 적혀 있다. 오늘날 ‘효자동’의 어원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청와대 옆 동네 청운동의 숨은 문화유적 흔적들
효자동을 비껴 더 위로 가면 청운동이다. 인근에 청와대와 칠궁 등이 있다. 청와대와 칠궁 관람은 홈페이지에 미리 신청하면 탐방 가능하다. 또 겸재 정선이 태어났다는 경복고(1761년 유란동)가 있다. 도로를 건너면 청운초등학교(청운동 123번). 송강 정철(1536~1593)은 지금의 청운초등학교 주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청운초교 바로 윗길 골목으로 올라가면 현대아파트 앞쪽에서 선원 김상용의 옛 집터(청풍길 12-3앞)를 만나게 된다. 김상용은 이곳에 늠연당(凜然堂)이라는 집을 짓는다. 그 옆 암벽엔 송시열(1607~1689)이 ‘대명일월 백세청풍(大明日月 百世淸風)’이라 새겨둔다.
길을 되돌아 나와 농아학교로 가면 선희궁(서울시 유형문화재 32, 신교동 1-1)이 있다. 조선 제21대 임금인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장헌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 영조 40년(1764)에 건립되었다. 원래 영빈 이씨의 시호를 따서 의열묘라 하였다가 정조 12년(1788)에 선희궁으로 고쳤다.
선희궁터를 보고 나와 도로를 건너면 우당 기념관(신교동 6-22)이 있다.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기념관. 우당은 백사 이항복의 후대손이며 이승만 시절 부통령을 지낸 이시형의 동생이다.

통인시장을 기점으로 시작되는‘위항’의 숨은 명소들
길을 따라 가면 다시 대로변을 만나고 고갯길을 넘어서면 통인시장이다. 이곳에서 통인동쪽으로 가게 되면 세종대왕의 태생지 준수방(통인동 137번지 일대로 추정) 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세종은 태조 6년(1397) 4월10일(음력), 정안군(태종)의 잠저인 준수방에서 태어났다. 인왕산이 버팀목이 되고 앞쪽에는 백운동천이 흐르는 자리다. 그 근처에 천재 시인으로 유명했던 이상(1910~1937)이 살던 집(통인동 154)이 있다. 이상은 3세(1912년)부터 24세(1932년)까지 21년간 살았다. 이상은 어린 나이에 백부의 양자로 살았는데 원래 145평의 거옥이었단다. ‘10대조로부터 물려받은 고성’이라는 이상 작품은 이 집에 관한 글이다.
이상은 1933년 6월경 금홍과 함께 지금의 종로1가에 제비다방을 차리고 이후 이곳저곳을 떠돌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이상 집 골목길에서 눈에 띄는 대오서점이 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대오서점은 시대를 반영하는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반대로 시장을 건너면 옥인동 길목에 송석원터 팻말이 있다. 정조 때의 평민 시인 천수경이 살면서 붙인 이름. 송석원터 인근에는 한일합방조약에 옥새를 찍어준 순종의 비 순정효왕후의 백부인 윤덕영(1873~1940)의 호화주택이 있었다. 당시 이 집은 너무 호화롭고 거대하여 ‘조선의 아방궁’으로 불렸다. 1938년에 지은 박노수 가옥(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이다.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세운 집. 한옥이 중심이면서도 일부 서구식이 더해진 2층 집.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들여다 볼 수는 없다.
박노수 가옥에서 인왕산 쪽으로 올라가면 옥인동 시범아파트다. 재건축이 한창인 그곳에 안평대군의 집터를 추정할 수 있는 ‘기린교’가 숨어 있다.
다시 골목 속을 헤매면서 누상동, 누하동쪽을 더듬듯이 찾아와야 한다. 조선시대의 ‘위항’의 대표 지역이다. 그 골목 속에 화가 이중섭(1915~1956)의 집(누상동 166-10)이 있다.
그리고 찾을 곳은 필운대(필운동 12-3번지)다. 필운대 1길을 따라 배화여고(설립자 조세핀 필 캠벨 여사)로 가면 된다. 20세기 초 서양 선교사 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배화여고 생활관(등록문화재 93호, 1916년 신축)은 원래 선교사들의 숙소였다. 붉은색 2층 벽돌집에 기와지붕을 얹은 모습, 정면 가운데 현관 바로 위에 발코니를 꾸민 모습이 이색적이면서 아름답다.
학교 안, 후미진 곳에 필운대가 있다. 필운대는 명재상으로 알려진 백사 이항복(1556∼1618)이 살았던 집터. 필운대 바위 앞에 서면 경복궁과 백악산을 비롯한 서울의 모든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지만 지금은 건물이 앞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향후 서촌은 시민들의 문화체험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머지않아 서촌의 속살을 잘 들여다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여행정보
○대중교통 : 3호선 경복궁역 하차. 4번 출구로 나오면 통의동. 2번 출구로 나오면 자하문로다. 1번 출구로 나오면 배화여고, 사직동 방면으로 가게 된다.
○별미집 : 통의동쪽에서는 동궁산채(02-722-2234, 비빔밥)가 있고 통인동에는 토속촌(02-737-7444, 삼계탕)이 유명하다. 사직동방면에서는 길가의 루킹라징(02-734-7323, 커피, 케이크), 올갱이국집(02-722-5324, 백반류)이 괜찮다. 골목을 돌다보면 구석구석 특색 있는 퓨전 카페들이 숨어 있다.
○기타 정보 : 청와대사랑채(02-723-0300, http://www.cwdsarangchae.kr/), 청와대 견학신청(http://www.president.go.kr/ kr/cheongwadae/viewing/guidance.php), 서울관광마케팅(주)에 미리 예약하면 여행 가능하다. 문의 : 02~6925~0777.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