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화점 빅3에 매장을 낸 A사는 최근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최고 28%에 달하는 백화점 판매 수수료를 내는 것도 불합리한데 백화점 VIP 고객의 식사 초대 비용 부담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달에 한번 꼴로 점포당 최대 70만원을 부담하는 이런 행사가 최근들어 부쩍 잦아지고 있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VIP 고객에 대한 백화점의 마케팅 전쟁이 불붙으면서 이 회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도 8배 이상 늘어났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고율의 판매 수수료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참고 있지만 백화점 측이 부담해야 할 마케팅 비용까지 입점업체에 떠 넘기는 행태는 불공정거래를 일삼는 백화점 업계의 단면”이라고 주장했다.
백화점과 아동용품을 거래하는 B사 K대표는 백화점 거래조건에 대해 묻자 분통을 터트렸다.
백화점 측이 최대 30%의 판매 수수료를 꼬박꼬박 받는 것도 모자라 결제대금을 마감한 지 2개월 뒤에나 지급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전체 금액을 온전히 주는 게 아니라 하자 보증금 명목으로 20%를 떼간다.
하자 보증금 정산도 월말 판매분일수록 늦어져 최대 5개월 뒤 수령하는 경우도 생긴다. 고율의 하자보증금은 B사의 마진보다 몇 배 큰 금액으로 자금 운용에 곤란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백화점에서는 이렇게 모여진 하자 보증금을 일정기간 동안 다른 사업에 투자하는 등 자금 운용을 탄력적으로 할 수 있지만 판매 중소기업에게는 자금난 악화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지방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L사장은 지난해 백화점 구매담당에게 제안을 받았다.
식당에서 판매하고 있는 유기농 반찬이 상품성이 있어 백화점에서 팔자는 것이었다. 백화점에서 판매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수수료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화점에서 제안한 수수료는 25%. L사장은 수수료 인하를 요구했고 결국 22%에 계약했다.
백화점 행사장에서 들어가면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고, 매출이 늘 것이라고 생각한 L사장의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테리어부터 백화점의 간섭이 시작된 것이다.
L사장은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안 되는 것이 많다”며 “어떤 것은 백화점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거절당했고, 애써 준비한 마케팅 소품도 구입하고 제대로 설치도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L사장의 희망이 깨진 결정적인 이유는 예상보다 이익이 남지 않는다는 것. 일주일간 행사로 큰 매출을 올린 L사장은 행사 후 인건비, 물류비에 백화점 수수료까지 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결국 L사장은 판매가격을 올렸다. 그러자 매출부진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백화점 행사는 매출이 큰 제품 위주로 계속 교체하기 때문에 예상치보다 매출이 적으면 재계약 불가 대상으로 찍힌다”며 “장사가 잘 안돼 속상한데 백화점 눈치까지 봐야해 여길 왜 들어왔나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같은 문제점은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백화점 거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백화점과 거래시 겪는 불공정 거래 행위가 과거 대비 여전하다는 응답이 70.3%에 달했으며 개선됐다는 응답은 23.9%에 그쳤다. 불공정 거래에 대한 대응방안으로는 거래 감내가 88.2%로 시정요구(12%)보다 7배나 많았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상위 3개사가 시장점유율 82%를 차지하는 등 과점현상을 보여 우월적 지위를 통한 협력중소기업에 대한 일방적 거래행태와 성과위주의 무리한 경영이 이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중소기업들이 백화점과 거래시 느끼는 문제로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율과 불공정행위, 해외 유명브랜드와의 차별”을 꼽았다.
유통 전문가들도 입점업체들에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현재의 백화점 영업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백화점의 영업 방식은 일본 백화점과 비슷한 ‘특정매입’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입점기업이 입고, 판매, 재고처리 등을 모두 담당하는 형태로 미국,EU 등 선진국 백화점이 채택하고 있는 직매입에 비해 비용부담을 줄이고 순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대형 유통업체는 납품업체에 각종 홍보책자 비용까지 떠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이에 따라 특정매입 위주의 국내 백화점업계가 소매업이라기 보다 부동산 임대업에 가까워 세율책정시 임대업으로 적용, 고율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익성 중소기업연구원 박사는 “직매입 위주의 선진국 백화점 당기순이익률이 미국 2.83%, 일본 4.34%로 한자리수 인데 비해 국내 백화점은 23.45%에 달한다”며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 오세조 교수도 “미국과 유럽의 경우 백화점이 재고부담까지 떠안는 ‘직매입’이 주를 이룬다”면서 “이런 경우 백화점이 더 책임감 있게 제품 판매에 나서고, 잘 팔릴 상품을 우선 선별하기 때문에 트렌드도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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