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벌가의 혈육전쟁이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벌 대기업들의 가족분쟁이 계열분리와 사업확장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중소기업들의 생존이 위협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시너지효과가 거의 없는 문어발식 확장과 같은 한국 재벌들의 구태가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재벌 대기업들은 쪼개진 회사를 키우려는 욕심에 중소기업 영역까지 무차별적으로 침투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그룹 내 계열사들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의 폐해는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재벌 대기업의 고래싸움에 중소기업들의 등만 터질 수밖에 없다.
국민정서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전근대적인 경영세습 행태에 무분별한 문어발식 기업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밖에도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대기업 계열사의 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이 중소기업에 끼치는 피해는 어떤가? 이 같은 행위는 전문 중소기업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는 옳지 못한 관행이다.
더욱이 계열 자회사 설립 후 일감을 몰아주는 식으로 기업덩치를 키워, 나이가 어리고 경험도 없는 2세, 3세에까지 편법증여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10대 그룹의 경우, 최근 5년간 닷새에 한 개씩 재벌그룹 계열사가 만들어졌을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재벌 대기업의 그릇된 경영행태를 바로잡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이에 법제도를 정비·개정해서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행태를 차단하기 위해 이전가격세제를 상속증여세법에 적용하고, 또 선진국에서처럼 대주주와 친인척 관계에 있는 기업 간 거래에는 ‘사업기회 박탈’ 개념을 적용, 불공정거래로 규제하는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이전가격세제는 기업이 모회사 등 국외 특수 관계자와 거래를 하면서 그 거래가격을 정상가격보다 높거나 낮게 적용해 과세소득이 감소되는 경우, 과세당국이 그 거래에 대해 정상가격을 기준으로 과세소득금액을 다시 계산해 조세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데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 본국에서 원·부자재를 구입하면서 가격을 과다하게 책정해 중국법인의 이윤을 축소시키는 행위가 이전가격세제 적용대상이 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의 극대이윤 추구행위는 나름대로 정당성을 지녔다. 하지만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에 이 같은 재벌 대기업의 분별없는 경영행태는 상대적 열위에 놓인 대다수 중소기업들을 궤사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하다. 종국에는 한국기업 전체가 동반공멸을 자초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선진 글로벌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경영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회사를 대물림하는 대신 전문 경영인을 발탁하고 창업일가는 후선에서 지원하는 모습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이끌어가고 있다. 물론, 한국에도 이 같은 CEO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 박사야말로 투명경영, 정도경영, 윤리경영의 표본이요 원조였다. 그의 경영 철학과 이념은 전승돼 지금도 존경의 대상과 귀감이 되고 있다.
오늘날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참 기업인은 아쉽게도 줄어만 간다. 유일한 박사처럼 정도경영에 대물림 없이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전통이 세워지는 기업사회가 된다면 글로벌 한국기업은 늘어나고 그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제 재벌 대기업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20대의 페이스북 창업자 저커버그처럼 공익과 수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완수와 사회공헌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치고 기업이익의 통큰 사회환원에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더타임스지 서울 특파원은 한국 대기업 회장들은 직접 대중과 부대끼는 경우도, 언론 앞에 나서는 경우도, 주주총회에 나가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하면서 직함이 아닌 ‘인물’ 그 자체로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워렌 버핏,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해외 기업인들과는 천양지차라고 지적하는 쓴 소리에 귀를 열어야 한다.
자동차와 휴대폰 등을 팔아서 세계 1등을 차지하는 것도 좋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투명경영을 실천하며, 더 많은 기부행위로 사회공헌도를 높일 때 진정 존경받는 아름다운 기업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럴 때라야 세계 1등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한국의 재벌 대기업이 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성용
서울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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